노무현 대통령이 과학기술 중심사회를 표방하고 정보과학기술 보좌관을 신설해 마음이 든든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걸리는 것은 과학기술이 개혁과는 별로 상관 없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 지배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나는 과학기술이야말로 개혁이 가장 시급한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계는 아직도 100년 전 팽배했던 과학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기부가 최근 생명윤리법 준비 과정에서 일부 과학자들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옹호한 것은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성장과 규제가 반드시 양립 불가능한 것만은 아닙니다. 시민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 옳은 것은 과감히 수용하는 아량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기술 개발에 기초과학이 중요함은 상식입니다. 그러나 기초과학보다 더 기초를 이루는 과학기술학(STS)에 대한 인식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더욱이 과학기술에서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개혁을 위해 과학기술학의 기반 구축은 필수입니다.
과기부는 이미 90년대 말부터 과학기술을 문화로 보는 정책 전환을 이루었습니다. 세 대학에 과학문화연구센터를 만들었고 한국과학문화재단의 예산을 대폭 늘려 과학문화 확산에 힘쓰고 있습니다. 다행한 일이지만 아직 미흡합니다. 중국은 20여년 전 과학기술학의 한 분야인 과학사를 현대화를 위한 수단으로 보고 육성했습니다. 대만과 일본도 최근 과학기술학에 파격적인 예산을 배정해 지원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과학문화사업은 과학의 대중화에 집중하고 있는데 과학기술학의 기초 없이는 모래 위의 누각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상당 수준에 올라선 과학기술학을 더욱 키우고 활용해야 합니다. 번듯한 국책연구소를 세우고 대학의 연구와 교육을 집중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국민적 이해에 과학박물관의 몫을 뺄 수 없습니다. 정부는 2006년을 목표로 경기 과천시에 국립과학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시 위주의 과학관을 연구 기능까지 겸한 국립과학기술박물관으로 격상하고 특수법인체로 전환해 전문가를 관장으로 영입해야 합니다. 자연사박물관은 가난한 나라 방글라데시와 우간다에도 10개씩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10년간 자연사박물관 건립운동이 문화관광부를 통해 진행되어 왔지만 예산 지원이 끊어져 중단된 상태입니다. 박물관법을 개정해 과기부가 국립과학기술박물관과 함께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을 주도하기 바랍니다.
오늘날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의식의 고취는 세계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4년 전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세계과학회의에서 채택된 ‘과학과 과학지식의 이용에 관한 선언’과 ‘과학의제:행동강령’의 후속 조치를 각 국은 서두르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과학기술자 헌장 초안을 만들었습니다만 이를 기초로 헌장이 하루빨리 제정되도록 힘써 주시기를 당부합니다. 박 장관의 건투를 빕니다.
송상용 한양대 석좌교수·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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