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66…1933년 6월8일(11)

  • 입력 2003년 3월 13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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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이 팔을 쭉 내뻗듯 몸을 쭉 펴고 치마의 매무새를 다듬자 다른 여자들도 차례차례 일어나 돌아갈 준비를 시작했다. 짚단을 들어올리는 여자, 은어가 가득한 소쿠리를 툭툭 터는 여자, 바구니를 머리에 이는 여자, 두 팔로 빨래와 보자기를 껴안는 여자, 미나리에 묻은 모래를 씻어내는 여자들의 손길 같은 바람에 치마와 저고리가 부드럽게 나부꼈다.

“밀양에서 아마 키가 젤로 클 끼다”

“키만 치면 우리 서방도 못 하지는 않은데, 이우철이는 콧대가 반듯한 게 얼굴이 기품있게 생겼다 아이가”

“그 얼굴로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온 동네를 달리니까네”

“우리 서방은 비가 오면 밭일도 안 나가고, 동네 남정네들하고 막걸리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화투짝이나 돌리고 있으니, 아이구 속에 불이 난다”

“이우철은 밀양의 자랑이다”

큐큐파파 큐큐파파 강바람에 참새들이 오글오글 모여 짹짹거리는 버드나무가 살랑살랑 흔들리고 나무 사이로 비쳐 내 발치로 떨어지는 빛을 반사하며 큐큐파파 큐큐파파 녹음! 이 계절의 녹음은 일년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 이때가 지나면 햇볕에 타 거뭇거뭇해진다 큐큐파파 6월의 녹음보다 푸릇푸릇한 것은 없다 큐큐파파 우철은 강을 질러가는 바람의 냄새를 맡았다 간신히 큐큐파파 이 강이 여동생의 목숨을 앗아가고 아버지의 유골을 뿌린 강이라는 것을 잊고 큐큐파파 은어를 낚고 있군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고 있군 빛이 반사돼서 이쁘군 하고 큐큐파파 두 사람 일을 떠올리지 않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큐큐파파 큐큐파파 그리고 나는 큐큐파파 스무 살이 되었다 힘들게 힘들게 큐큐파파 정말 힘들게 신음하고 몸부림치고 시간이 흘러 어머니는 마흔살 인혜는 스물두살 우근이는 여덟살 미옥이도 곧 세살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 큐큐파파 아들이 태어났다 큐큐파파 세월은 외길처럼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군데군데 벼랑이 있어 사다리를 걸쳐놓지 않으면 저편으로 건널 수 없다 큐큐파파 여동생하고 아버지가 없어진 날에는 사다리를 걸쳐놓고 싶지 않다 큐큐파파 큐큐파파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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