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은 17일 청와대에서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으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이적성 여부를 재검토하고 국가정보원 도청의혹 및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사건을 철저히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국가정보원 도청의혹 사건은 국가기관의 신뢰에 심각한 타격을 준 문제로 (국정원이) 도청했다면 책임자를 처벌하고, 하지 않았다면 도청했다고 주장한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며 사실상 검찰 수사의 방향을 제시했다.
노 대통령은 또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사건) 수사가 중지됐다고 하는데 만약 내가 걸림돌이라서 그랬다면 그러한 정치적 고려를 전혀 할 필요가 없으니 (수사를) 하라”며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노 대통령은 이와 함께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간주해 수배하는 것은 시대의 변화에 맞지 않는 만큼 (법무부가) 진지하게 검토해 달라”며 검찰의 법 집행 자체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한 노 대통령의 이 같은 구체적인 지시는 ‘대통령의 사견(私見)’에 불과해 법적 구속력은 없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견해. 그러나 검찰의 인사권을 지닌 대통령의 지시는 실제로는 검찰 수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법조인들은 말한다.
대검의 한 간부는 “노 대통령의 구체적 사건에 대한 발언은 극히 이례적인 것”이라며 “노 대통령이 사심을 갖고 얘기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수사는 검찰에 전적으로 맡긴다’고 공언한 만큼 수사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가급적 말을 아껴야 한다”며 “자신의 측근들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사건에 대한 수사 촉구도 듣기에 따라서는 ‘빨리 사건을 처리해 결백을 입증해 달라’는 주문으로 볼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검찰의 수사는 노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지지마자 이에 응답이라도 하는 듯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국정원 도청의혹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지검은 18일 국정원 현직 과장과 관련된 민간인 2명을 긴급체포하는 등 수사에 피치를 올리고 있다. 대검도 한총련 수배자들이 자수를 하고 잘못을 시인할 경우 기소유예 등 처벌 완화를 신중히 검토 중이다.
다만 노 대통령의 측근 A, Y씨가 각각 2억원, 5000만원씩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의혹 사건은 관련자 잠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기가 여전히 불가능하다는 게 검찰의 판단.
이와 관련해 이석연(李石淵) 변호사는 “수사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검찰이고 법원이 재판을 통해 종결하는 것”이라며 “검찰이 스스로 풀어야 할 문제를 대통령이 이래라 저래라 하고 지시하는 것은 검찰의 독립, 중립에 방해가 될 뿐”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경실련의 고계현(高桂鉉) 정책실장은 “나라종금에 대한 노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과거처럼 어떤 문제를 덮으라는 게 아니고 투명하게 수사하라는 것이므로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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