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모두 선생님의 입을 뚫어지게 쳐다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제서야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사실 물처럼 보였던 이 액체는 탄산수소나트륨과 식초의 혼합물. 컵에는 혼합과정에서 생성된 이산화탄소가 가득 들어 있었다.
학원가에만 유명 강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득형(李得炯·39)씨는 주민자치센터의 유명 과학 강사.
이날 이씨의 강의 주제는 ‘연소(燃燒)’였다. 매주 테마별로 진행되는 ‘어린이 과학영재교실’은 이 지역에서 상당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가락2동을 포함해 송파구 4개 동(洞) 자치센터에 개설된 과학교실엔 대기자만 40명이 넘는다. 이씨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강의는 자치센터에서 처음 선보인 탓에 지난해 10월 문을 열 때부터 화제였다.
그러나 이씨는 과학 전공자가 아니다. 대학에선 스페인어를 전공했고 사회에선 입시학원의 영어강사로 일했다. 처음 자치센터에서도 주부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강의했다.
“과학교실을 위해 한 달 동안 과학강사 전문교육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여가시간은 강의 준비에 할애합니다.”
이씨가 많은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자치센터에 이처럼 열성을 다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씨에겐 한국청년연합회 행정감시국장이란 또 다른 직함이 있다. 1999년엔 이 연합회에서 서울시와 각 자치구 공무원의 ‘친절도’를 조사해 순위를 발표, 공직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친절도 조사는 이후 송파구 등 여러 자치구가 ‘주민감사관제’와 ‘친절팀’을 신설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탁상행정만 있는 게 아닙니다. 탁상운동도 문제죠.” 이씨는 목소리만 높이는 시민단체 활동에 머물지 않고 직접 현장에서 주민들과 호흡하는 것을 택했다.
“자치센터가 제대로 기능하면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시민운동이 가능해집니다. 센터가 새로운 시민사회 형성에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주민들을 센터로 자꾸 모아야 합니다. 과학교실은 기초과학과 센터의 미래를 모두 생각해 만든 것입니다.”
이씨는 기회가 닿으면 환경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환경만큼 주민 공통의 관심사는 없기 때문이다.
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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