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슈][노무현정부 출범 한달]틀깨기 곳곳서 파장

  • 입력 2003년 3월 24일 1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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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신임 장관들이 1박2일 일정으로 워크숍을 가졌던 8일.

식사시간이 돼 노 대통령과 장관들이 식당에 들어섰을 때 식당 한 쪽에서는 이미 몇몇 젊은 비서관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를 본 한 장관이 “그 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인데…”라고 혀를 찼으나 노 대통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공식회의 석상은 아니지만 토론을 벌이다가 대통령 앞에서 담배를 꺼내 피우는 참모가 있을 만큼 요즘 청와대 안팎에서는 기존 관념과 관행의 틀을 깨는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이런 변화의 진원지는 물론 노 대통령 자신이다. 자주 “청와대 생활이 답답하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노 대통령은 최근 전에 살던 명륜동 집에서 가져온 자전거를 타려다가 경호실의 제지를 받고 포기하기도 했다. 아침에 관저에서 집무실까지 혼자 걸어 내려와 경호원들을 긴장시키기도 하고, 인사문제를 다루는 참모들과의 회의에서는 서로 얼굴을 붉히며 갑론을박하는 장면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 같은 변화의 흐름은 청와대와 정부의 운용 시스템에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정부 출범 직후 단행된 장차관급 인사에서는 기존의 서열 파괴가 두드러졌다. 40대의 군수 출신을 행정자치부 장관에, 검찰 근무 경험이 전무한 여성변호사를 법무장관에 기용했다. 기수를 파괴한 검찰 인사를 통해 수뇌부를 전면 교체하는가 하면, 법조계 내의 서열관행을 깨기 위해 판사와 검사의 단일호봉제도 추진하고 있다.

고급 공무원의 충원방식도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연공서열 관행의 기반이던 행정고시 일변도에서 인턴수습제 및 개방형 채용을 확대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변화의 시도는 새 정부의 주축세력이 이른바 ‘비주류’ 출신이기에 가능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노 대통령이 직접 현장에 나서는 일도 잦아질 전망이다. 평검사들과의 TV 생중계 대화에 이어 노 대통령은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장성들은 물론이고 필요하면 영관급 장교들과도 대화하겠다”고 예고했다. 노동부 업무보고 때는 “노사정위원회에 참석해 노사정위에서 결정된 사안은 반드시 지켜진다는 점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현안에 대해서도 자신이 직접 해법을 내놓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산 금정산과 양산 천성산 구간의 경부고속철 공사를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이나, 국가정보원 직원의 부처 출입제 폐지를 검토키로 한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다만 이런 태도에 대해서는 자칫 모든 이해집단이 대통령과 직접 담판하려 나설 경우 정부 공조직의 무력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론도 나온다.

대야(對野)관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노 대통령은 지난 한 달 동안 여야 3당 지도부를 차례로 초청해 대화를 나눴고, 국회 국방위 소속 여야의원들과도 만났다. 다음달 2일에는 국회에 직접 가서 시정연설을 할 예정이다.

반면 민주당과의 관계는 당정 분리가 이뤄진 탓도 있지만 과거보다는 긴밀하지 못한 상황이다. 노 대통령은 민주당 지도부의 요구에 따라 격주에 한 번씩 정례회동을 갖기로 했지만 여야를 같은 거리에 놓고 정국을 풀어가는 ‘등거리 정치’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변화에 대해서는 ‘신선하다’는 긍정론과 ‘불안하다’는 부정론이 교차하고 있지만 노 대통령과 새 정부의 ‘틀 깨기’ 행보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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