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그래 또 만내자.
잘 먹었다.
―1년 후 조선 신궁 대회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육상 왕국’ 양정고보의 감색 짧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경성 양정고등보통학교는 4년 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6위에 입상한 김은배를 배출한 육상계의 명문고로 어떤 대회에서든 표창대는 양정의 감색바지 일색이었고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면 대회장이 웅성거릴 정도로 기세가 등등했다.
양정의 운동부에 들어가 마라톤으로 전향한 손기정의 이름은 금방 세간으로 퍼져나갔다. 일본의 신문이나 조선의 신문이나 ‘육상계의 혜성, 손기정! 세계 최고기록 수립’ ‘침체해 있던 일본 육상계에 새로운 희망, 조선반도의 손기정’ ‘마라손 조선 대기염! 손기정 전대미문의 최고기록 달성’이라고 대서특필하고 세계 기록을 경신할 때마다 일본과 조선에서 동시에 호외를 찍어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기사를 통해 그의 성장 과정을 알았다. 겨우 조밥 한 공기밖에 먹을 수 없는 극빈한 살림, 낮에는 학교, 밤에는 참외와 각설탕을 짊어지고 행상을 나가고, 털실로 양말을 짜서 팔기도 하고, 군밤을 팔면서 학비를 벌고, 여자 고무신을 새끼줄로 발에 묶어 신고 피를 흘리며 뛰었던 유소년기, 날품팔이로 모은 돈을 털어 산 작업화를 건네며, “그렇게 달리는 게 좋으면 철저하게 하라”고 눈물을 흘렸던 어머니, 우동집에서 배달을 하고 접시를 닦으면서도 연습시간을 짜내기 위해 발목에 끈을 묶어 창 밖으로 늘어 뜨려놓고, 옆집에서 이발소를 하는 친구에게 새벽에 잡아당겨 깨우도록 한 소년기, 홍수로 떠내려간 집.
나는 공복과 싸운 적이 없는 자신을 행운아라 여기고, 그에게 운동화를 자랑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오히려 행운아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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