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경제부총리 ▼
전반적인 경제정책을 조율하는 경제팀 수장(首長). 재경부 차관 임명 후 1년 10개월 만에 경제부총리로 ‘초고속 승진’해 화제가 됐다.
재경부 세제실장 때 해양부 장관이던 노 대통령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판단력과 조정능력이 뛰어나고 상사(上司)의 마음을 정확히 읽고 면밀하게 대비하는 ‘준비의 달인’이다. 목표가 주어지면 관련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설득하는 추진력과 친화력도 갖추었다.
행정고시 기수로 보면 경제장관 가운데 ‘후배’에 속한다. 또 공직생활 대부분을 세제(稅制) 분야에서 보내 경제정책 전체를 보는 시야가 넓지 못하고 시류(時流)를 많이 탄다는 지적도 받는다.
대내외 경제상황이 어려운 가운데 ‘경제 살리기’와 ‘개혁’이라는 다소 상충되는 목표를 함께 추진해야 하는 난제를 안고 있다.
조각(組閣)에서 경제부총리로 발탁된 직후 국내외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법인세 인하문제를 둘러싸고 리더십이 흔들렸고 ‘미국의 영변 핵시설 폭격 발언’ 논란 등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이 고교(경복고) 및 대학(서울대 법대) 선배다.
▼이정우 대통령정책실장 ▼
소득분배론을 전공한 ‘진보성향’의 경제학자 출신으로 경제분야에서 ‘노무현 코드’를 대표한다는 평을 듣는다. 계층간 균형발전과 빈부격차 해소에 관심이 많다. 노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지지율이 급락했던 지난해 8월부터 노무현 캠프에 합류해 경제정책 입안에 관여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경북대 교수로 활동하던 시절엔 ‘효율과 성장’보다 ‘형평과 삶의 질’을 중시하는 논문을 많이 발표했다. 이른바 ‘박정희(朴正熙)식 개발독재론’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다.
당초 재계 및 경제관료 사회에서는 급진적 이미지로 불안감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그를 접해본 사람들은 호의적 평가를 많이 한다. 자기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남의 말을 많이 들으며 현실경제의 복잡성도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과 함께 변형윤(邊衡尹) 서울대 명예교수의 호를 딴 이른바 ‘학현(學峴)사단’ 주요 멤버. 권기홍(權奇洪) 노동부장관과는 대구사회연구소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같이했다. 박봉흠 예산처장관, 최종찬 건교부 장관, 조학국(趙學國) 공정위 부위원장은 서울대 상대 68학번 동기다.
▼박봉흠 예산처장관 ▼
경제관료 가운데 ‘좌 진표, 우 봉흠’이란 말이 나올 만큼 노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
옛 경제기획원에서부터 예산분야에서 오래 일했다. 경남 출신이지만 김대중(金大中) 정부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이 때문에 예산처 핵심요직인 예산실장을 만 2년 지낸 뒤 바로 차관으로 승진했다.
노 대통령은 의원 시절부터 예산배정 문제로 알고 지내던 사이다. 김 경제부총리와 행시 13회 동기지만 최근 “예산처 장관은 경제부총리가 경제팀을 잘 이끌 수 있도록 보좌하는 게 임무”라며 몸을 낮추고 있다.
작가 이문열(李文烈)씨와는 밀양초등학교 친구. 이씨의 인기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불량학생 ‘엄석대’와 대비되는 모범생 ‘한병태’의 모델이라는 후문. 앞뒤를 너무 잰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신중한 스타일이다.
▼윤진식 산자부장관 ▼
과묵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지만 한번 잡은 일은 끝까지 놓지 않는다. 그래서 붙여진 ‘진돗개’란 별명은 본인도 좋아한다.
대통령비서실 조세금융비서관이던 1997년 말 당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에게 ‘외환위기 징후’를 처음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세청장 재직 때는 인천공항 입국장의 비리를 없애기 위해 힘썼다.
당초 산자부 장관 후보로는 거론되지 않다가 막판에 임명됐다. 취임 직후 과장급 이상 간부가 모두 참석한 1박2일 토론회를 갖고 부(部) 업무 전반에 대해 토론을 벌여 개방적이고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옛 재무부에서 금융정책과장 국제금융국장을 거친 ‘금융통’. 개별 기업이나 산업 관련 정책을 다뤄본 경험이 없어 산자부장관으로서의 역량은 아직 미지수.
▼최종찬 건교부장관 ▼
차분한 성격에 정책 아이디어가 많다. 장관 취임 직후 지방국토관리청장과 전화로 현안을 논의하는 ‘전화미팅’, 정책 실무자와 점심시간을 이용해 토론식 업무보고를 받는 ‘햄버거 미팅’ 등 다양한 토론방식을 잇달아 도입했다.
예산처 차관이던 DJ정부 때 총선을 앞두고 TV토론에서 국가채무 급증의 위험성을 다소 인정했다가 청와대의 눈 밖에 나 몇 달 뒤 바로 물러난 아픈 경험이 있다. 하지만 당시 보여준 소신 때문에 언젠가 입각할 것으로 전망돼 왔다. 또 잠시 ‘야인(野人)’으로 있을 때 관료사회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지적한 e메일을 예산처 공무원들에게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건(高建) 총리, 윤진식 장관 등과 같은 테니스 클럽 회원이며 임광토건 임광수(林光洙) 회장이 장인이다. 논리적이지만 추진력은 다소 약하다는 평.
▼진대제 정통부장관 ▼
‘미스터 반도체’ ‘미스터 디지털’이란 별명을 가진 ‘삼성반도체 신화’의 한 주역. 특히 영어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 외국인 투자자들 앞에서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자주 했다.
정통부 장관 임명 후 아들의 병역기피 의혹과 이중국적 문제가 불거지면서 ‘장관자격 논란’에 휩싸였다. 이 때문에 “뛰어난 전문경영인(CEO)을 성격이 다른 공직사회에 끌어들여 망신만 줬다”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는 평.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투자수익률은 얼마나 되느냐”고 따지는 것도 과거 장관들한테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다만 반도체 분야 전문가지만 정통부 업무의 핵심인 통신분야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 또 관료사회에서 리더십을 얼마나 발휘할지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특별취재팀
▼DJ때와 달라진 盧경제팀 컬러 ▼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경제팀 리더’들을 살펴보면 전임 김대중(金大中) 정부 때와 몇 가지 차이를 보인다.
DJ정부에서 경제정책을 주도한 핵심 인사들의 두드러진 특징은 호남과 옛 경제기획원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진념(陳稔·전북 부안) 전윤철(田允喆·전남 목포) 강봉균(康奉均·전북 군산) 이기호(李起浩·광주) 이남기(李南基·전북 김제) 장승우(張丞玗·광주)씨 등이 대표적이었다.
‘호남-기획원’이란 공통점을 지닌 이들은 DJ정부 5년간 경제정책을 주무르는 실세(實勢)였다. 특히 경제부총리, 기획예산처 장관, 공정거래위원장,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등 경제 분야 요직을 돌아가면서 맡았다.
예를 들어 진념씨는 기획예산위원장-기획예산처 장관-재정경제부 장관(뒤에 경제부총리로 승격)을 지냈다. 또 전윤철씨는 공정거래위원장-예산처 장관-대통령비서실장-경제부총리를 거치면서 DJ정부 5년간 한번도 실세그룹에서 밀려난 적이 없었다.
이들 개개인의 능력에 대한 평가를 둘러싸고 시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DJ정부 실정(失政) 중의 하나로 꼽히는 ‘지역편중 인사’가 경제팀에서도 두드러졌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반면 노무현 정부 경제팀은 꽤 다르다.
지역적으로 보면 김진표(金振杓) 경제부총리가 경기 수원이고 이정우(李廷雨) 정책실장은 대구, 박봉흠(朴奉欽) 예산처 장관은 경남 밀양이다.
또 최종찬(崔鍾璨) 건설교통부 장관은 강원 강릉, 윤진식(尹鎭植) 산업자원부 장관은 충북 충주, 강철규(姜哲圭) 공정거래위원장은 충남 공주 출신이다.
김영진(金泳鎭) 농림부 장관과 차관급이지만 ‘힘’에서는 웬만한 장관을 능가하는 이용섭(李庸燮) 국세청장은 각각 전남 강진과 함평이 고향이다.
과거 경력도 다양하다. 옛 재무부(김진표 윤진식 이용섭), 기획원(최종찬 박봉흠), 교수(이정우 강철규), 기업인(진대제) 출신 등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번 경제팀은 최소한 ‘순혈(純血)주의’에 따른 부작용은 적을 것으로 보여 잘하면 ‘드림팀’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반면 각자 ‘걸어온 길’이 다르고 구조적으로 경제부총리의 리더십도 약해 한번 삐걱거리면 쉽게 수습하기 어려운 ‘따로국밥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2003 경제정책 리더들 취재팀 ▼
▽팀장=권순활 경제부차장
▽팀원=김광현 구자룡 김동원 천광암 공종식 황재성 이은우 송진흡 고기정 기자(이상 경제부)
김광현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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