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중인 미 해병대 제1해병사단 제1연대는 지난주 장갑차와 트럭을 이용해 국도를 시속 10㎞로 이동했다. 이때 다른 부대가 국도 옆 이라크 진지를 60㎜ 박격포로 공격했다. 이라크측도 반격했다. 네 번의 실패 끝에 다섯 번째 박격포가 진지에 명중했다. 병사들은 일제히 “와” 하고 함성을 올렸다. 나도 몰래 함께 환성을 올렸다.
중립을 지켜야 하는 언론인으로 나는 미군의 공격이 성공한 것을 함께 기뻐해야 할 까닭이 없다. 저 진지에서 ‘이라크를 지키자’며 필사적으로 싸웠던 이라크 병사는 틀림없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치웠다’는 감정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나시리야에서 쿠트로 향해온 최근 일주일간은 연일 전투에 휩쓸렸다. 도로 양측에서 총격을 받으면 무작정 트럭에서 뛰어내려 땅바닥에 머리를 감싸고 엎드린다. 자신을 공격하는 이라크 병사는 무서운 ‘적’이고 미군은 믿을 수 있는 ‘친구’로 여기게 된다. 힘든 여건에서 침식을 같이 하는 미군 병사들과 우정도 싹튼다.
미국 정부는 이번에 600여명의 기자에게 종군을 인정했다. 특히 미국의 지방언론사 기자가 많다. 나는 이것을 일종의 정보전략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군에 감정이입된 기자들에게 미군 병사의 활약을 대량으로 보도하도록 해 국내 여론이 이라크전쟁을 지지하도록 만들려는 계산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까지 내가 쓴 기사가 특별히 미군을 편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미군에 대해 가혹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미군과 함께 있는 이상 ‘미군이 이라크를 이렇게 공격했다’고 미군을 주어로 쓰는 것이 많다.
며칠 전 해병대 간부가 “좋은 기삿거리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이라크 병사들이 숨어 있던 집에서 발견한 것이라면서 방독면과 중화제 주사기 등 화학무기 대비용 장비를 보여주었다. 해병대는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갖고 있으니까 방독면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는 하루 정도 고민을 하다 기사를 쓰지 않았다. 그렇게 중요한 장비라면 버리고 갈 이유가 없었을 것이며 화학무기가 발견되기 전에 추측보도는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 뉴스는 미군의 공식 발표를 통해 세계에 전해졌다. 정확한 실상은 훗날에야 밝혀질 것이다.
정리〓조헌주 도쿄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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