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장에 갇혀 있는 지금이 오히려 마음이 편해 천국에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의 삶은 정말 생지옥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4개월 전 중국에서 라오스를 거쳐 태국으로 몰래 들어오다 경찰에 검거된 탈북자 이성춘씨(가명·26)는 북한이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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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출신인 그는 95년 식량난을 견디지 못해 굶어죽지 않으려고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다가 중국 공안에게 체포됐다. 그는 강제로 북한에 송환돼 무산군의 안전부 감옥에서 심한 고초를 겪고 풀려 난 뒤 곧바로 다시 탈북, 중국 대륙을 떠돌아다니며 근근이 목숨을 연명해 왔다.
“강제 송환됐을 땐 사흘 밤낮 동안 두들겨 맞고,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누군가가 훔쳐다 놓은 곰팡이 핀 메주 덩어리를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정신 없이 마구 씹어 먹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먹지 못한 채 강제노역에 동원돼 기계처럼 빨리 삽질하고, 10㎏이 넘는 벽돌 2장을 들고 뛰어 다녀야 하는 등 혹사를 당했습니다. 영양실조로 픽픽 쓰러지는 사람들을 수없이 봤지요.”
이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을 되새기는 그의 얼굴은 이내 어두워졌다. 차츰 눈시울이 붉어지고 목소리도 떨렸다. 그에게 계속 질문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돼 이번엔 여자 탈북자들이 수용돼 있는 곳을 찾았다.
여자동에 수용된 탈북자들은 좋지 않은 음식이나마 하루 세끼씩 꼬박꼬박 먹어서인지 중국에서 볼 수 있는 다른 탈북자들에 비해선 그나마 안색이 나아 보였다.
“이젠 적어도 북한으로 잡혀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벗어난 만큼 발을 쭉 뻗고 쉬고 싶을 뿐입니다.”
김미순씨(가명·27)는 ‘불편한 데는 없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기구한 삶을 들려줬다. 그는 95년과 97년 아버지와 어머니를 잇달아 여의는 바람에 대학을 포기하고 이듬해 봄 8촌 언니가 사는 중국 지린(吉林)성으로 건너갔다. 중국에만 가면 먹는 것에 대해서는 근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중국 공안의 살벌한 단속으로 4번이나 붙잡혀 북송됐다 다시 탈출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끝내 폐결핵까지 얻고 말았다고 했다.
이들의 한결같은 꿈은 한국에 가서 사람답게 살아보는 것. 중국에서 다방 등을 전전하며 구차하게 살아왔다는 정승혜씨(가명·28)는 요즘 틈틈이 영어책을 편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잘 살지만 경쟁이 심해서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에 가면 영어를 많이 쓴다고 하던데 지금부터 준비하려고 합니다.”
이들을 면회하기 위해선 면회신청서를 제출하고 여권과 카메라 등을 이민국 직원에게 맡겨야 했다. 이민국측은 금속류와 마약 등 금지된 물품 반입을 막기 위해 면회객들의 온몸을 손으로 샅샅이 훑는 등 철저하게 검색을 한 뒤에야 면회를 허용했다.
기자를 안내한 한 비정부기구(NGO)의 관계자는 “만약 이분들이 국경선을 넘기 전에 중국측에 체포됐다면 지금쯤 북한으로 끌려가 구타를 당하고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라며 “(지금 감옥에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탈북자들이 태국으로 오는 루트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 중국 동북3성에서 출발해 중국 남부까지 내려온 뒤 다시 라오스를 가로질러 태국으로 들어와야 하는 만큼 많은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 야생동물이 우글거리는 정글을 통과해야 하고, 메콩강의 거센 물살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2월 초엔 한 선교사의 안내로 국경을 넘던 탈북자 일행이 중국 국경수비대에게 붙잡혀 북송되는 사건도 있었다.
태국의 이민국 유치장에 수감 중인 탈북자들은 유엔에 난민 지위를 신청해놓은 상태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그들에겐 인터뷰 기회가 주어지고 난민 판정을 받으면 꿈에도 그리던 한국행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오직 생존을 위해 모든 위험을 감수하며 낯선 남국에서 숨어 지내는 수많은 탈북자들이 언제 한국에 와 오랜 유랑의 삶을 보상받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방콕=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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