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權 암흑' 떠도는 탈북자]<6>청소년의 정착

  • 입력 2003년 4월 7일 1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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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6월 일가족 6명과 함께 중국 베이징(北京)의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사무소에 진입, 난민 지위를 인정받고 한국 망명에 성공함으로써 탈북자 망명사건의 한 획을 그은 장길수군(19·서울 S고 3학년).

본명이 장창수(張昌秀)인 그는 한국에 온 지 2년이 다 돼 가는 요즘 서울의 여느 10대 청소년들과 별 차이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창수군은 현재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외삼촌, 올해 연세대에 입학한 형(21)과 함께 서울의 한 아파트(21평)에서 단란하게 살고 있다.

그는 오전 6시에 일어나 학교에 가고, 수업이 끝나면 컴퓨터학원과 영어학원에 다닌다. 정보화, 국제화 시대를 살아갈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집에 돌아오면 자정 무렵이지만 ‘꿈’이 있기에 고단함을 이겨내고 있다.

▼연재기사 목록▼

- <5>NGO의 지원활동
- <4>미국의 입장
- <3>중국엔 숨을 곳이 없다
- <2>태국 감옥의 북한인들
- <1>중국서 동남아로…끝없는 유랑

“대학에 가서 북한에서 배우지 못한 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남한에서도 배운 게 없으면 손발이 힘들지 않습니까.”

입시 중압감 속에서도 틈틈이 온라인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즐기고, TV에 나오는 탤런트 송혜교를 보면 가슴이 콩콩 뛴다는 그의 모습에선 더 이상 어두운 구석을 찾기 어렵다. 그는 6일 기자를 만났을 때도 스스럼없이 대답하고, 사진 촬영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한 번 거짓말을 하면 계속 거짓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남에게 내 자신에 관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물론 한국에서의 삶이 100%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북에 두고 온 아버지(53)와 어머니(48) 형(22) 생각만 하면 지금도 눈물이 흐른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이라도 알고 싶어요. 제발 통일이 돼서 다시 만날 때까지 살아계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보다 더 큰 어려움은 탈북자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이라고 창수군은 지적한다.

“북한 출신이라고 얘기하면 사람들이 좋지 않게 생각합니다. 피하거나 깔보기도 하고 싸움을 걸어오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냥 남한 사람과 똑같이 대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이 역시 살 만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숱한 고난 끝에 누리게 된 ‘자유’와 ‘기회’를 토대로 푸른 꿈을 키워가고 있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사기극 휘말려 돈-가정 모두 잃기도▼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온 탈북자들 가운데 한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많은 탈북자들이 체제의 차이와 사회적 차별을 극복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다.

▽“사선을 넘길 잘했다”=서울의 한 출판사 과장인 조봉일(趙奉一·51)씨. 그는 98년 5월 탈북해 중국 등을 떠돌다 한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99년 11월 서울에 왔다. 그는 그 후 브로커를 통해 북에 남겨둔 식구들을 탈출시켜 2001년 한국에서 극적으로 상봉했다.

그러나 인민군 간부 출신인 그가 변변한 직장을 얻기란 쉽지 않았다.

“택배 회사와 가스충전소 등 여러 직종을 전전했죠. 고생이 심할 때면 ‘괜히 왔나’ 하는 후회도 했고요. 하지만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란 믿음을 갖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다행히도 그는 아는 사람의 도움으로 2년 전 지금의 회사로 옮겼고 성실함을 인정받아 지난해엔 과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퇴근 후에는 아내가 운영하는 조그만 슈퍼마켓에서 밤늦게까지 손님을 맞는다.

대학에 재학 중인 아들(22)과 최근 한 극단의 배우 공모에 합격한 딸(20)을 보면 고생한 기억은 눈 녹듯 사라진다. 그는 요즘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은 보람을 느끼고 있다.

▽“너무 비참하다”=99년 서울에 온 탈북자 A씨(48)는 최근 자신과 동료 탈북자 5명의 돈 3억7000만원을 모아 어느 벤처회사에 투자했다가 모두 날리고 실의에 빠져 있다. 큰 수익을 미끼로 투자자를 유인했던 벤처회사 관계자들이 다단계 피라미드식 사기로 돈을 떼어먹고 잠적했기 때문.

“돈 가정 명예를 모두 잃었습니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투자했다가 나를 믿었던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줘 정말 죽고 싶을 따름입니다.”

자유를 찾아 온 한국에서 사기극에 휘말리는 바람에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아는 사람들과의 교류도 모두 끊어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그는 한탄했다.다른 탈북자 김모씨는 “여기서 태어난 사람들도 어려운데 ‘다른 곳에서 날아 온 씨앗’이 잘 살 수 있겠느냐”며 “한국의 현실은 오기 전에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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