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면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정착시켜 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현재 보육 문제는 국가의 ‘장기 지속적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태에 와 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2002년 잠정 집계에 따르면 한국 여성 한 명당 출산율은 사상 최저이자 세계에서 가장 낮은 1.17명을 기록했다. 이 수치는 한국 사회의 ‘재생산’ 위기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대대적 ‘출산 파업’이 진행 중이며 아이를 낳은 여성들도 심각한 불안과 혼란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간 한국의 보육정책을 들여다보면 정작 ‘아이’는 빠져 있었다. 보육정책이 여성 인력활용 차원에만 초점을 두고 세워졌기 때문이다. 개발독재시대에는 어쩔 수 없이 인력 수급을 최우선시했다 치자. 그러나 어느 정도 먹고 살 수 있게 돼 ‘삶의 질’을 운위하게 된 지금도 상황은 여전하다.
지금과 같은 형편에서 보육기관에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기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고 믿는 부모가 과연 있을까. 이제는 여성 사회 진출의 문을 활짝 열면서 동시에 사회를 ‘가정화’하는 일을 병행하고 통합해 내야 한다. 다음 세대를 제대로 기르고 다시 서로를 보살피면서 극도로 피폐해진 삶을 ‘재활력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간 보육 담당 부서는 보육에 대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었는가. 양육의 질에 대한 감각 없이 관료적으로 육아 문제를 다루어 오지는 않았는가. 인격 발달에 가장 중요한 5세 이하 아이를 보살피는 보육교사의 월급이 일반 교사의 월급 수준에 못 미치는 열악한 여건은 이런 비전 없는 정책의 결과는 아니었는가.
앞으로 육아사업을 맡게 되는 부서는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제대로 된 비전과 마스터플랜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보육사업을 부서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그간 숫자와 하드웨어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던 사업들을 실질적 생산성을 내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사업으로 전환해 내는 것, 육아 관련 모든 활동을 관료적 시각이 아니라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여성의 시각에서 재조정해 내는 것, 그래서 ‘생산’만이 아니라 ‘재생산’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보육 담당 부서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
“아이, 걱정 말고 낳으십시오. 노무현이 길러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 대통령의 미소를 우리는 기억한다. 아이를 낳는 것이 축복인 세상에 살고 싶지 않는가. 사회 재생산을 위협하는 위기상황이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관료주의를 성찰하는 계기이자 ‘보살핌’에 대한 인식 전환을 전폭적으로 이루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알림 ▼
이 글은 4일자 ‘여론마당’에 실린 이화여대 김성이 교수의 ‘保育 여성부 이관 5가지 不可論’ 칼럼에 대한 반론입니다.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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