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세일전쟁에 속터지는 납품업체

  • 입력 2003년 4월 10일 1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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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직 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회적으로 납품가를 낮추라는 압력이 들어오죠.”

‘할인점끼리 가격전쟁을 벌인 이후 납품가를 낮춰달라는 요구가 있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제과업체 관리팀 직원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는 또 “하루 빨리 유통업체간 가격 할인 경쟁을 끝내야 합니다. 이렇게 계속되다간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질 판입니다”라고 덧붙였다.

할인점간 가격전쟁이 일어난 지 약 한 달이 지났다. 현재는 숨고르기 중. 할인점 입장에서는 무조건 ‘공격 앞으로’를 외치기보다 ‘제대로 진격했는지’ 돌이켜볼 때다.

가격전쟁의 신호탄은 지난달 6일 삼성 홈플러스가 쏘아 올렸다. 1000여개 품목의 가격을 평균 10% 내린다고 발표한 것. 자금력을 바탕으로 역(逆)마진을 보더라도 밀어붙인다는 기세였다.

신세계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바로 다음날 경쟁지역 점포에서 동일 상품 가격을 더 낮췄다. 이마트는 10개 점포에서 50여개, 롯데마트는 7개 점포에서 60개 품목의 값을 인하했다. 저마다 ‘최저 가격’을 내세우고 있는 입장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와 같은 가격 경쟁에 정작 불이 난 곳은 제조업체다. 할인점이 싸게 물건을 팔려면 더 싸게 상품을 공급받아야만 한다. 제조업체에 압력이 들어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싼 가격에 기뻐해야 할 소비자들의 반응도 의외로 시큰둥하다. 최저 가격은 좋은데 정작 사려고 하는 물품은 잘 없기 때문이다. 할인점이 대부분 자사 브랜드(PB·Private Brand) 제품이나 손이 잘 가지 않는 중소기업 제품만 가격을 내려놨다는 평가다.

할인점 매출을 봐도 기대 이하의 성적표다. 홈플러스의 3월 매출은 1, 2월 평균보다 3% 정도 느는 선에서 그쳤다. 같은 기간 신세계 이마트 매출도 약 5% 상승에 그쳤다. 박리다매(薄利多賣)를 노렸던 가격할인이 제대로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가격할인인가. 유통업체들간의 기세 싸움에 ‘소비자를 위한 할인정책’이란 구실을 붙여놓은 게 아닌지 궁금해진다.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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