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하고 6·10만세 사건 때 얼매나 많은 사람들의 머리가 깨져 나갔노? 다리는 또 얼매가 부러졌고, 손톱이 뜯겨나간 사람하며, 1만은 족히 될 끼다. ‘독립만세’를 외치면 죄가 되는데, 그날 밤, ‘만세’를 외친 조선 사람들은 하나도 벌을 안 받았다 아이가. 하지만 조선 사람들이라면 하나같이 마음속으로는 ‘조선만세’를 외쳤을 끼다. 하용이가 경성의 민족신문을 가져 왔더라. 이게 8월 10일자 사설이다. 우근아, 한 번 읽어 봐라” 박씨는 저고리 소매에서 신문에서 오려낸 쪼가리를 꺼내, 불끈 쥔 두 주먹을 허리에 대고 있는 우근에게 건넸다.
우근은 떨리는 목소리로 읽어내려 갔다.
“우리의 손기정이 우승했다. 우리의 젊은 손기정은 세계에 으뜸가는 승리에 빛났다. 마라손의 승자, 손기정은 스포츠 이상의 승자라는 것을 기억하자! 조선은 손기정, 남승룡 양군에게 불우함과 불행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양군은 조선에게 승리의 영광을 가져다주었다. 조선의 젊은이들이여! 이 말의 의미를 알겠는가!”
박씨는 이마에 돋은 땀을 닦으려고도 하지 않고 아픔을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호외에 심훈 선생의 시가 실려 있재? 읽으면서 눈물이 쏟아져서, 눈물이 그칠 때까지 몇 번이고 읽다가 다 외어버렸다. ‘그대들의 첩보(捷報)를 전하는 호외 뒷등에 붓을 달리는 이 손은 형용 못할 감격에 떨린다. 이국의 하늘 아래서, 그대들의 심장에 용솟음쳤던 피가 2천3백만의 하나인 내 혈관 속을 달렸기 때문이다.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은 깊은 밤 전승의 방울소리에 터질 듯 찢어질 듯. 침울한 어둠 속에 짓눌렸던 고토(故土)의 하늘도 올림픽 거화(炬火)를 켜든 것처럼 화다닥 밝으려 하는구나!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 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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