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 경매에선 박수근의 유화 ‘아이 업은 소녀’가 5억500만원에 팔렸다. 국내 현대미술경매 사상 최고가였다. 이달 초엔 고려불화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가 5억2000만원에 낙찰돼 국내 미술경매가 2위를 기록했다.
이 같은 신기록 행진의 한복판엔 늘 여성 경매사인 박혜경(朴惠卿·37) 서울옥션 경매팀장이 있었다. 그는 몇 명 안 되는 국내 미술전문경매사 가운데 단연 선두 주자.
경매는 시종 숨 가쁜 격전의 현장이다. 2, 3초마다 응찰가가 수백만원씩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 짧은 순간마다 박 팀장은 당당하고 경쾌한 목소리로 구매자들의 베팅을 유도한다. 작품의 미학이나 투자가치 등을 서너 단어로 집약해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것이다.
8년 전 대기업 홍보직을 그만두고 미술 경매에 뛰어들어 70여 차례의 경매를 치러낸 박 팀장. 그는 격전을 치르고 나면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옆에 있는 전통 정원 ‘희원(熙園)’을 찾는다. 경매의 열기를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자연과 전통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 위해서다.
28일 오후 이 곳에서 만난 박 팀장은 진입로에서부터 희원을 예찬했다.
“진입로가 참 매력적이죠. 왼쪽으로 시원한 물이 있고 오른쪽으로 아늑한 담이 있습니다. 담의 문양 하나, 기와 하나, 이름 모를 야생화 하나가 그렇게 정겨울 수 없습니다. 게다가 좌우로 늘어선 옛 돌조각을 보면 이것이 바로 담백함이구나 하는 느낌입니다.”
정원 마당에 들어서면 자연미를 그대로 살린 전통 정원의 모습이 펼쳐진다. 한가운데에 연못이 있고 그 둘레에 정자, 석등(石燈), 석불(石佛)과 나무들이 있다.
“옛 선비들이 정원에 거닐면서 시를 읊고 세상을 고민했던 모습이 떠오른다”고 말하는 박 팀장.
그는 희원 옆에 있는 호암미술관도 빼놓지 않았다.
“8년 전 경매를 처음 시작할 때 현대미술만 했는데 이제는 고미술도 해야 합니다. 호암미술관의 문화재 명품을 보면 고미술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박 팀장은 정원 옆 찻집에 들른 뒤 뒤편에 있는 수십 개의 돌장승 사이로 걸어갔다.
“돌장승 얼굴을 보면 소박하고 무심하죠. 있는 듯 없는 듯하지만 돌아서려 하면 다시 보고 싶어지는 그런 매력이 있습니다.”
전통과 자연, 돌조각에 푹 빠진 모습이다. 냉정한 경매사에게 이런 감춰진 면모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돌장승 옆에서 박 팀장이 이렇게 말했다.
“7월엔 옛 돌조각을 한데 모아 경매를 해볼 생각이에요.”
그는 역시 프로 경매사였다.
용인=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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