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후반 여성 교주의 지휘 아래 60여명의 신도가 20여대 승합차에 탄 채 산간지대를 이동 중이다. 두건과 옷, 장화, 차량 외장이 모두 흰색인데다 정차 시에도 대열 주위에 흰색 천을 두른다. 이들의 공식 명칭인 ‘파나웹 연구소’란 명칭 대신 ‘흰옷교단’으로 불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20여년 전부터 활동해온 이들이 최근 주목받게 된 것은 ‘곧 혹성이 지구에 충돌해 인류가 멸망한다’며 지난달 24일 근거지를 떠나면서부터. 헬기까지 동원해 이동 상황을 중계하는 언론매체의 집중 보도를 통해 이들의 존재가 알려지자 인근 주민들이 도로를 막는 바람에 이들은 다시 10여일 만에 본거지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번 주에 발행된 주간지들은 흰옷교단 기사를 크게 다루고 있다. 미모의 영어학원 강사가 여고생 4명을 끌어들인 것이 교단 활동의 시작이었다거나 전 남편도 그녀를 ‘정체불명의 여성’으로 평했다는 인터뷰 기사, 식비와 흰 천 세탁비로만 하루 100만엔(약1000만원)이 든다는 등등 이들의 기괴한 모습과 비상식적인 행동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 옴 진리교의 사린가스 사건을 겪은 까닭일까. 일본인 사이에서는 점차 이들을 악의 불길한 종자처럼 적대시하는 풍조가 일고 있다. 최초에는 다른 곳으로 옮겨가라고 서류를 전달하던 주민들도 갈수록 과격해져 이들의 차량에 몰려들어 천을 찢고 두건을 잡아당기는 등 집단따돌림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경찰 당국은 이들의 운전에 장애가 될 정도로 스티커를 붙이며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다루겠다고 경고할 뿐 지켜보기만 하고 있다. 이들이 주위에 해를 끼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흰옷교단 소동을 보면서 새삼 사상과 종교의 자유가 민주사회의 대원칙임을 되새겨본다. 나 또는 ‘우리’와 생각이 다른 모든 존재를 부인하는 사회적 집단 광기야말로, 비상식적 믿음을 가졌다 해도 사회에 별 해를 끼치지 않는 ‘흰옷교단’의 존재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 것도.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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