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은 대체로 미국식 기업내부 윤리경영시스템을 따르고 있다. 즉 총론격인 윤리강령과 임직원 행동지침을 제정하고, 윤리담당자와 전담부서를 설치하는 것.
▽윤리경영에 대한 개념 차이=윤리경영의 핵심 내용과 범위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견해차가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991년부터 ‘경제정의상’을 제정, 시상해 왔는데 이들은 지분 및 출자구조, 공정거래, 지역사회봉사, 국가경제공헌도 등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산업자원부와 전경련은 지난해부터 ‘기업윤리대상’(가칭)을 공동 주최하기 위해 평가 기준안을 마련해 왔으나 최근 의견 차이를 확인하고 각자 시상하기로 했다. 산자부와 전경련이 마련하고 있는 기준에서 가장 큰 차이는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관계’ ‘노사관계’ 등이다.
전문가들 사이에도 윤리경영의 핵심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견 차이가 많다. 고려대 문형구(文炯玖·경영학) 교수는 “최근 윤리경영을 도입하고 있는 기업들은 임직원 부패를 방지하고 처벌하는 것이 윤리경영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일이 많다”면서 “더 중요한 것은 임직원들을 인간으로 대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기업들의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을 만든 산업연구원(KIET)의 심영섭(沈永燮)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기업들의 움직임은 공정거래, 회계 투명성 등 핵심적인 윤리사항을 도외시한 채 자칫 윤리라는 미사여구로 회사 이미지만 좋게 하려는 쪽으로 흐를 수 있다”고 경계했다.
▽선도기업의 움직임=논쟁이 진행되는 것과 별개로 선도기업들은 나름의 경험을 바탕으로 점차 윤리경영을 정착, 발전시키고 있다.
신세계는 1999년 처음 윤리규범과 행동지침을 마련한 이래 매년 이를 보완 개정해 왔다. 이 회사 기업윤리실천사무국 명노현(明魯賢) 과장은 “도입 초기에는 임직원의 부정부패 방지와 협력회사와의 공정한 관계에 힘을 쏟았으나 이제는 많이 정착됐다고 보고, 주주 소비자 임직원 지역사회 등 기업 이해관계자(stakeholder)들의 공존공영을 위한 제도로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신세계가 도입한 것은 직원들이 경영진에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오픈도어시스템(핫라인) 개설, 납품업체를 비롯한 모든 외부자와의 계약서에 공통양식을 만들어 불공정거래나 개인적 비리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 등이다.
국민은행은 3월 주주총회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선언하고 이사 16명 가운데 12명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또 ‘사외이사 후보 인선 자문단’을 별도로 구성해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높였다. 금융기관의 특성을 살려 기업신용평가를 할 때 윤리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총점 200점 가운데 8점을 가산하는 제도와 외부 계약자들에 대한 청렴계약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내부고발자 보호제도, 법규 준수 자기점검(매주 2회 인터넷으로) 프로그램 등도 한국의 다른 기업에서는 흔치 않은 제도.
국민은행 김태곤(金泰坤) 준법감시인은 “아직 내부고발이 많이 들어오지는 않는다”면서 “2만7000여명 임직원의 몸에 윤리가 배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최고경영자(CEO)의 의지=윤리경영을 앞서 도입해 실천하고 있는 회사들의 공통점은 CEO가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윤리경영 실천에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임직원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어내는 것 △사회 환경 전반의 윤리 수준이 아직 낮다는 것 등을 든다.
가톨릭대 김기찬(金基燦·경영학) 교수는 “기업윤리의 핵심은 부패방지, 공정거래, 경영투명성 등 3가지”라며 “경영상의 의사결정과 임직원 한사람 한사람의 행동에까지 윤리가 체화되어야 윤리경영이 이뤄진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기업 스스로 추진하는 윤리경영은 한계가 있으므로 외부 사회의 감시와 평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전경련 국성호(鞠成鎬) 윤리경영 담당 상무는 “기업 윤리가 또 다른 규제가 되어서는 안 되고 기업 스스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