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신뢰경영]<7>日 완성차-부품업체 파트너십 "끈끈"

  • 입력 2003년 5월 18일 17시 17분


《도요타와 혼다는 세계 2위의 자동차 생산대국 일본을 대표하는 자동차 메이커다. 1990년 이후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 제조업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핵심기업이기도 하다. 도요타와 혼다자동차는 지난해 사상최대의 이익을 냈다. 도요타는 2002 회계연도에서 순이익만 9446억엔, 혼다는 4267억엔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이 둘의 경쟁력으로 세계 최고의 품질과 생산성, 부단한 원가절감 노력을 꼽는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기술수준을 자랑하는 협력업체와의 파트너십이 없었다면 도요타와 혼다의 생산성 신화가 가능했을까. 자동차회사와 부품 협력업체는 운명공동체다.》

▽‘우리는 운명공동체’=도요타의 최고급차 브랜드 ‘렉서스’는 토머스 프리드먼(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의 베스트셀러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핵심 키워드로 등장한다. 여기서 렉서스는 ‘보편적이고 강력한 세계화 시스템’을 상징한다. 도요타의 글로벌한 사업전개는 세계화 그 이상이다.

그렇지만 도요타의 경영철학은 어딘지 보수적이다. 주주보다 종업원에게 더 신경 쓰는 게 아무래도 일본식 경영에 충실하려는 쪽이다.

글로벌 아웃소싱을 추진하면서도 협력업체와의 ‘계열 관계’는 돈독하게 유지되고 있다.

“자동차 부품 개발 경험이 있는 부품업체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도요타를 위해’ 부품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우수한 부품업체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도요타는 존재하지 않는다.” 도요타의 기타가와 데쓰오(北川哲夫) 해외공보부장의 말이다.

도요타는 95년 고베 대지진으로 국내외 일부 공장이 생산을 멈춘 경험이 있다. 엔진 관련 핵심부품을 생산하던 협력업체가 지진 피해로 가동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기타가와 부장은 “2만여개의 부품 중 하나가 잘못돼도 자동차는 멈춘다. 그 많은 부품을 도요타가 모두 만들 수 없다. 이것이 부품업체와의 협력이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혼다는 어떤가. 혼다는 일본에만 무려 530개사의 1차 협력업체를 두고 있다. 도요타(211개)에 비해 월등히 많다.

혼다에선 설계 및 개발단계에서부터 협력업체와 ‘이마를 맞대고 고민하는 모습’이 매우 자연스럽다. 예컨대 신차 개발 프로젝트에는 헤드램프 전장(電裝)부품 등 파트별 부품업체들이 모두 참여한다. 기술협력과 정보교류가 매우 활발하다. 심지어 부품업체의 연구개발 자금까지 대준다.

혼다자동차 나카무라 요시아키(中村利明)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마케팅팀장은 “협력업체와 업무상 비밀을 공유하기 때문에 공존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운명공동체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완성차업체들은 일방적인 주문과 종속관계를 뜻하는 ‘시타우케(下請·하청)’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차등을 두는 동반자적 관계는 무의미하다는 의미이리라.

▽원가절감은 공동의 과제=도요타는 2000년 7월 그들만의 독특하고 엄격한 원가관리 시스템인 ‘CCC21(Construction of Cost Competitiveness for the 21st Century)’을 가동했다. 구매비용의 90%를 차지하는 170여개 부품을 대상으로 3년간 30%의 원가절감이 목표다.

피를 말리는 원가절감 작업엔 도요타의 설계 생산 조달부문 외에 협력업체도 파트너로 참여한다. 170개 품목별로 협력업체 기술진이 들어간 연구팀을 구성한 것. 원가절감은 협력업체의 기술개발과 혁신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CCC21은 이제 실행단계에 들어갔다. 올해부터 신차개발 및 모델 변경시엔 CCC21 시스템이 적용된다. 협력업체와의 공동기술개발을 통해 도요타는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가장 훌륭한 품질의 부품을 조달할 수 있게 됐다.”(기타가와 부장)

그의 설명대로라면 앞으로는 자동차에 맞는 부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원가혁신을 달성한 부품을 쓸 수 있는 자동차를 설계해야 한다는 얘기다.

도요타는 원가절감 목표를 초과 달성할 경우 이에 따른 이익증가분은 협력업체와 나눠 갖는다. 공존공생(共存共生)을 위해선 합리적인 이윤분배와 공동의 목표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냉혹한 현실, 부품업체가 생존하려면=혼다는 미군이 철수하면서 남긴 트럭엔진을 개조, 자전거용 소형엔진을 만들면서 처음 세상에 ‘혼다’를 알린다. 이때가 1948년. 지금은 오토바이 생산 세계 1위, 승용차판매 세계 7위(2002년 기준)로 성장했다. 이런 혼다의 협력업체 중에는 자본투자한 ‘계열관계’가 많다.

“그들이 언제까지 계열사로 남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계열사이기 때문에 혜택이 보장된 것은 없다. ‘품질 가격 조달 경영(QCDM·Quality Cost Delivery Management)’의 4원칙을 충족하지 못하는 협력업체와는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 혼다 기업홍보담당 나가이 마사야(長井昌也)의 말이다.

일본 닛산자동차와 미쓰비시자동차가 각각 르노와 다임러에 합병된 이후 기존 협력업체와의 관계를 끊고 최적 조달의 경쟁체제로 전환한 것을 염두에 둔 지적인 것 같았다.

그런데도 도요타와 혼다는 부품업체와의 협력관계가 비교적 오래 지속되고 있다. 이는 ‘부품업체의 기술력’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도요타의 한 부품업체 대표이사는 “부품업체가 독자적인 기술개발력을 가지지 못하면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이런 능력이 있어야 완성차메이커로부터 공동개발의 제안을 받는다”고 말했다.

일본의 완성차업계와 부품업체간 신뢰관계는 ‘실력을 전제로 다져진 동맹관계’라는 것이다.

도쿄·도요타(일본)=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신뢰가 車 생산성 향상 이끈다" ▼

개선활동의 생산현장 적용도 도요타와 협력업체직원의 몫이다. 공동개발한 원가절감 아이디어와 신기술 등이 신차 생산시스템에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현장지도하고 있다.
사진제공 도요타자동차

“자동차회사와 협력업체 사이에 신뢰관계가 구축돼 있으면 거래비용이 싸진다.”

서울대 주우진 교수(경영학)와 미국 브리검영대의 다이어 교수는 최근 조직학 분야의 권위잡지인 조직과학(Organization Science)에 공동발표한 논문 ‘자동차회사와 협력업체의 신뢰문제’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한국 미국 일본의 8개 완성차회사와 344개 부품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이 연구에서 도요타와 혼다는 협력업체와의 신뢰관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뢰관계가 가장 낮은 자동차회사의 구매팀은 같은 물량을 구매하면서도 도요타의 구매인력보다 5배나 많았다. 협력업체를 믿지 못하면서 구매인력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주 교수는 “신뢰는 자동차회사와 부품업체간 정보 및 자원의 공유를 촉진시켜 생산성 향상으로 이끈다”고 설명했다.

덴소 등 일본의 부품업체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췄다. 물론 모기업인 도요타의 줄기찬 품질 및 공정지도가 토대가 됐다. 지금은 자체적인 기술개발과 품질관리로 모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린다. 이른바 서로 윈윈(Win-Win)하는 선순환 구조다.

삼성경제연구소 복득규 수석연구원은 “일본에선 경쟁 부품업체도 정보공유의 대상이 된다. 정보의 공유는 원가절감, 궁극적으로는 자동차 가격을 낮춘다. 이것이 일본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이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한국의 부품업체는 아직도 1개 완성차업체에 의존하는 전속적 거래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규모가 영세해 자체적인 기술개발 노력도 부족하다. 자동차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 4사의 1차 협력업체 881개사 가운데 1개사에만 납품하는 부품업체는 2001년 현재 488개사(55.4%)에 이른다. 반면 4개사에 모두 물건을 대는 협력업체는 고작 76개사(8.6%)에 그쳤다.

자동차조합의 노만숙 기획조사과장은 “이전에는 완성차업체가 납품가격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등 주종관계가 분명했으나 최근엔 부품업체가 개발과정에 참여하거나 원가계산을 공동으로 하는 등 신뢰 형성을 위한 토대를 쌓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처럼 부품 협력업체가 스스로 힘(기술개발)을 키우지 않는 한 동등한 수준의 파트너십 형성은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특별취재팀>

▽팀장=허승호 경제부차장

▽팀원=김용기 신연수 이강운 공종식 정미경 박중현 김두영

홍석민 기자(이상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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