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잘 들어라 앞으로는 오빠 언니 형 누나 카고 부르지 마라 너거들 학교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대답한다 아이가 구니모토 노부아키 구니모토 노부테쓰 구니모토 노부요시 구니모토 다마미 구니모토 노부코 가족들끼리 진짜 이름을 안 불러주면 누가 불러주겠노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이씨란 성은 일본사람한테 빼앗겼다 너거들한테 남은 것은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뿐이다 이름은 소리 내서 불러주지 않으면 죽어버린다
세 여자가 낳은 다섯 자식의 까만 눈동자 열 개가 똑바로 나를 쳐다보았다 보이고 있다는 감각이 온몸을 관통하고 나는 마음속으로 몸서리쳤다 내 눈은 지금 어떤 빛을 띠고 있을까? 아무 것도 숨길 수 없다 나는 나 자신을 속속 드러낸 채 시선을 되받아야 했다 말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내가 어버이로서 진정 내 자식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다 나는 바짝 마른 입을 벌리고 푸석푸석한 혀를 움직여 살아 있는 다섯 자식의 이름과 죽은 두 자식의 이름을 불렀다 신태야! 신명아! 신철아! 신호야! 미옥아! 자옥아! 신자야!
1943년 5월15일 애투 섬에서 격전
<대본영 발표> 5월12일 유력한 미군 부대는 알루샨 열도 ‘애투 섬’에 상륙을 개시했다. 섬을 수비하고 있던 우리 부대는 이를 격퇴하기 위해 목하 격전 중에 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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