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병영/'통합 리더십' 세워야

  • 입력 2003년 6월 1일 18시 19분


이제 노무현 정부 출범 100일, 그리고 온 국민이 국민대통합의 장엄한 서사시를 함께 썼던 월드컵 1주년을 맞았다. 그런데 오늘의 모습은 어떠한가. 요즈음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첨예한 갈등과 균열의 파열음이 높아가고 사회적 양극화의 위기감이 하루가 다르게 고조되고 있다.

▼ 편들기식 국정운영 분열 불러 ▼

특히 최근에 있었던 화물연대 파업과 이른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시행을 둘러싼 정부의 대응을 보면서 우리는 대통령의 무원칙하고, 한쪽 편들기식의 국정운영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가뜩이나 우리 사회에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추구하기보다는 ‘내 편’ ‘네 편’을 가르며 힘겨루기와 맞대결을 통해 ‘완승(完勝)’을 겨냥하는 추세가 풍미하고 있다. 그런 판국에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편향적 자세를 보이면 국정혼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노 대통령과 청와대는 언필칭 출범 이후 ‘시스템에 의한 정치’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국민의 눈에 비친 모습은 ‘코드에 의한 정치’와 ‘인치(人治)’, 그리고 ‘아마추어리즘’이다.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통령 리더십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우선 대통령은 이제 분열적 리더십에서 통합적 리더십을 지향해야 한다. 통합적 리더십은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슬기롭게 조정 관리하고 사회적 합의와 국민통합을 일궈내는 창조적 리더십이다. 이를 위해 대통령은 이념적으로 지나치게 편향되거나 어느 한쪽에 서서는 안 되며, 국정의 중심에 서서 국민 전체를 품안에 아우르는 대국적(大局的) 정치를 해야 한다. 만약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지지세력에 연연해 그들의 손을 계속 들어주는 분열적 리더십을 구사하면 국민 대다수가 그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그가 명운을 걸고 추구하는 모든 개혁 프로그램도 물 건너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은 국민 대다수가 자신의 잠재적 지지세력이자 개혁세력임을 명심해야 한다. 대통령이 균형과 중심, 원칙과 정도를 지킬 때, 그리고 이념 권력 헤게모니에 집착하는 대신 민생에 열중할 때 그들은 모두 그의 우군(友軍)이 되는 것이다.

다음, 대통령은 점진적 합리적 개혁과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추구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과정을 소홀히 한 교조적 개혁은 민주적 기본질서와 사회적 통합을 해친다. 그런 의미에서 바르고 건강한 개혁은 국민의 구체적 삶을 자유롭고 풍요롭게 하는 실용주의적 개혁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는 과도한 이념의 거품을 거두고 개혁성과 전문성을 함께 중시할 때 가능한 일이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올 1월 취임한 브라질의 새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의 경우다. 브라질 역사상 첫 좌파 국가수반인 그는 국민의 우려와는 달리 중도지향의 실용주의 정책을 채택해 국민통합에 성공하고 있다. 강성 노조위원장 출신인 그는 재계 지도자, 야당 의원 및 주지사 등과 머리를 맞대고 ‘경제 살리기’에 앞장서며, 중도세력과 제휴해 연립정부의 정치적 기반을 넓혔다. 그 결과 그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80%에 이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노 대통령이 국익차원에서 이라크 참전을 결정하고 북한 핵문제에 실용주의 노선을 따르면서 대다수 국민이 당초 가졌던 우려가 크게 줄어들고 지지를 보낸 것은 의미 있게 반추해 볼 만하다.

▼사회합의 생략한 개혁은 안돼 ▼

노 대통령은 서민적 풍모와 소박함, 열정과 순발력, 그리고 대중적 정서를 읽는 정치적 감수성과 빠른 학습능력 등 출중한 능력과 자질을 가진 지도자이다. 그러나 전환기의 통합적 리더십은 그 이상을 요구한다. 균형감각과 중심성, 공의(公義)로움과 헌신, 원칙중시와 진지성이 그것이다. 그가 이러한 덕목을 내면화할 때 국민과의 신뢰가 형성되고, 국민통합과 개혁의 대로가 활짝 열릴 것이다.

안병영 연세대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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