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첨단 유리빌딩의 한 부분을 떼어 낸 것 같은 이 유리판은 햇빛을 받아 전기에너지로 전환하는 태양광 발전기다. 3대의 발전기가 만드는 전기는 한달에 약 300kWh. 에어컨을 쓰지 않는 일반 가정집의 한달 평균 전기 사용량 정도다.
그러나 이 발전기는 자급자족용이 아니다. 발전기 제작비용 2900만원을 십시일반으로 모은 고교 교사, 출판사 사장, 대학교수, 학생 등 35명의 시민은 이 발전기로 만든 전기를 세상에 팔고 싶어 한다.
‘전기는 돈 내고 사서 쓰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지금껏 개인이 전기를 만들어 팔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국내 최초로 판매를 목적으로 시민들이 만든 발전기. 지난달 14일 가동을 시작한 이 발전기의 공식명칭은 ‘시민태양발전소’다.
● 개인이 전기를 만들어 판다?
발전소가 세워진 부암동 주택의 전기 계량기에서는 여느 집과는 다른 신기한 장면이 나타난다. 오른쪽으로 돌면서 사용한 전기량을 측정하는 전기계량기가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
태양광발전기가 만든 전기 가운데 쓰고 남은 전기가 전선을 타고 다시 한국전력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이 집은 한전에서 전기를 받아쓰는 것이 아니라 한전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집에서 쓰고 남는 전기만 한전에 흘려보냈습니다. 하지만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 전부를 한전으로 보내 파는 것이 목표입니다. 대신 집에서 쓰는 전기는 전부 한전에서 사서 쓸 계획이에요.”
시민태양발전소를 계획하고 출자자를 모집한 에너지대안센터 염광희 간사의 설명이다.
‘내 집에서 전기를 생산해 팔고, 내가 필요로 하는 전기는 사서 쓴다’는 기발한 생각이 실천으로 옮겨지게 된 계기는 지난해 9월 ‘대체 에너지 촉진법’이 개정된 것. 대체에너지란 석탄 석유 천연가스 원자력 등을 제외한 태양열 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연료전지 수소 등 이른바 신(新)에너지다.
개정법은 누구든지 대체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해 팔고자 할 경우 전력회사인 한전이 이를 kWh당 716원에 사 주도록 못박고 있다. 일반 가정에서 쓰는 전기 가격은 kWh당 70∼80원 정도. 햇빛으로 만든 전기를 716원에 파는 대신 70∼80원짜리 한전 전기를 쓰겠다는 게 발전소를 만든 사람들의 계산이다.
그러나 이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머릿속 계산이다. 당장은 생산된 전기를 한전으로 흘려보낼 뿐 팔지 못하고 있다. 판매자가 될 수 있는 자격요건인 ‘전기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업자 등록을 하려면 연회비 120만원을 내야 하는데 이게 큰 부담입니다. 생산한 전기를 다 팔아도 1년 수입이 260만원 정도인데, 연회비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습니다. 그래도 연회비 규정만 바뀌면 당장 전기 판매를 시도할 겁니다.”(염광희 간사)
연회비 부담이 해결된다 해도 ‘경제적’인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있다. 1년에 전기 팔아 버는 돈 260만원을 꼬박 모아도 발전소 설비에 든 투자원금 2900만원은 12년 뒤에야 찾을 수 있기 때문.
‘시민태양발전소’ 사람들은 왜 이런 ‘비경제적’인 일을 하려는 걸까.
● 화석에너지에서 독립해서 산다
경기 안성시에서 서양란을 재배하는 화훼업자 이광렬씨(43). 이씨의 집과 농장에 들어서면 여느 농가에서 볼 수 없는 몇 가지 풍경이 눈길을 끈다. 나무로 만들어진 나지막한 단층집 지붕 위에는 커다란 태양광 집열판 두 개가 은빛을 내며 반짝인다. 집 뒤편 난을 키우는 비닐하우스 앞에는 세 개의 날을 가진 15m 높이의 바람개비가 뱅글뱅글 돌고 있다. 집 앞마당 컨테이너 위에는 부암동 시민발전소에서 볼 수 있었던 태양광 발전기가 놓여있다.
15m 남짓 높이의 바람개비는 풍력으로 전기를 만들어 비닐하우스 밖에 설치된 가로등을 밝힌다. 지붕 위의 집열판은 햇볕의 따스함을 모아 온실로 보내 난이 자라기에 적당한 온도를 만들어준다.
이 발전기는 약간의 개보수를 거쳐 7월부터 전기 판매를 목적으로 한 ‘제2호 시민태양발전소’로 탈바꿈한다. 지난해 이씨가 2800만원을 투자해 만든 시설이지만 출자자를 모아 ‘시민발전소’로 바꾸고 이씨는 발전소의 소액 주주로 남을 계획이다.
“당장 경제적으로는 크게 기대할 게 없죠. 그나마 투자비를 제일 빨리 회수할 수 있는 게 온실 집열판이지만, 농업 난방용 기름에는 세금을 매기지 않기 때문에 사실은 기름을 쓰는 게 더 쌉니다. 그래도 저는 자연이 주는 에너지를 쓰는 게 더 좋아요. 에너지만큼은 독립해서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다른 집에는 전기가 나가도 우리 집에서는 불이 잘 안 나가죠.”
이씨는 초등학교 4학년, 2학년인 아이들에게 “우리 집은 햇볕을 쬐고 사는 ‘자연의 집’이야. 너희는 자연이 만든 에너지 속에서 살고 있는 거란다”라고 말한다.
1호 시민발전소에 200만원을 출자한 따님 출판사 송대원 사장은 발전소의 수익성에 대해 ‘오래 묻어둔 투자’라며 낙관했다.
“저보고 왜 그런 곳에 헛돈을 쓰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그야말로 투자를 한 겁니다. 물론 큰 돈 벌겠다고 한 투자는 아니고 원금 회수까지 시간도 꽤 걸릴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발전소가 전기를 잘 팔아서 언젠가 투자원금을 넘는 이익을 낼 거라고 믿습니다.”
에너지대안센터 이상훈 사무국장은 생태계에 피해를 주지 않고 반복해서 사용이 가능한 이른바 ‘재생 가능 에너지’의 효율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석유를 얻기 위해 사람들은 전쟁까지 합니다. 하지만 태양이나 바람은 서로 더 가지기 위해 다툴 필요가 없는 자원입니다. 재생가능 에너지로 만든 전기가 비싸고 비효율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더 많은 화석 연료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까지 벌이는 지금의 현실보다도 더 비효율적일까요.”
현재 독일은 풍력과 태양광 발전소가 만드는 전기 비중이 전체 전기의 6%가량이다. 반면 지난해 한국에서 대체 에너지로 만들어진 전기의 비중은 1.4%. 이마저 생산량의 94%가 쓰레기 소각열을 이용해 만들어진 것이다. 태양열과 풍력 등 재생가능 에너지를 이용한 전기는 전체 전기 생산량의 0.1% 정도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전기 팔려면 연회비 내고 사업자등록해야▼
발전기를 설치할 공간이 있고, 설치비만 감당할 수 있다면 일반인들도 전기를 만들어 자급자족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직접 발전사업자로 등록해 전기를 팔기에는 아직 여건이 성숙치 않았다. 120만원의 연회비를 내야 하는 데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접수하는 등록 절차도 복잡하기 때문. 일례로 서울시에는 아직 등록절차 담당공무원이 없다.
전기의 자급자족을 원한다면 우선 자기 가정에서 쓰는 전기 양을 점검해 봐야 한다. 에어컨을 쓰지 않는 집은 한달 평균 200∼300kWh의 전기를 쓴다. 에어컨을 쓰는 여름철에는 500kWh 이상을 사용할 수도 있다.
‘에너지 완전 독립’을 원한다면 가장 많은 전기를 사용하는 달(대개 여름철)의 전기 사용량을 기준으로 발전기를 구입하면 된다. 덜 쓰는 달에 쓰고 남은 전기는 무상으로 이웃에 주거나 한전으로 다시 흘러들어가게 할 수 있다.
이게 아까우면 ‘에너지 부분 독립’을 목표로 발전기 용량을 정한다. 한달 평균 사용량을 기준으로 구입하면 무난하다. 한달에 약 300kWh를 만들 수 있는 3kW짜리 발전기가 적당하다. 모자라는 전기는 한전 전기로 충당한다.
국내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해 주는 업체는 20개가 넘는다. 대부분 외국 제품을 수입해 설치하며 용량에 따라 가격과 설치비용이 조금씩 다르다. 3kW 발전기는 2500만원선. 자급자족용과 판매용에 설비 차이는 없다.
발전기 설치를 위해서는 옥외에 10평 정도 공간이 필요하다. 부암동 ‘시민 태양발전소’는 햇빛의 움직임을 따라 발전기가 움직이는 ‘태양 추적형’이라서 60평의 공간이 필요했다. 추적형은 발전 효율이 고정형 보다 높지만 설치비용이 10% 정도 더 든다. 에너지대안센터(02-394-2345)에서 구체적인 자문을 할 수 있다.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