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손놀림을 하고 있다. “농약냄새요? 맡아 본 지 10년도 넘었습니다. 우리 마을 전체가 무농약지대로 선포될 날이 머지않았죠.”한 농가에서 만난 이창룡(李昌龍·39)씨는 직접 무공해 액체비료를 만들며 이렇게 말했다. “농약을 썼다가는 너도 나도 다 죽죠. 쓰고 싶지도 않고요….”가족과 함께 줄곧 이곳에서 살아 온 이씨는
금평리 김애마을 이장이다. 설탕찌꺼기 등 7가지 재료를 섞어 유기액체비료를 만들어 마늘과 당근을 재배하고 있다. 홍동면은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무공해 농산물 생산지다.과채류 엽채류 등 100여 가지에 이르는 무공해 농산물 덕분에 이 마을의 경제 모습이 확연하게 바뀌었다.》
현재 인구는 4625명으로 8년 전인 95년에 비해 1000여명이 감소했다. 연평균 2.4%의 감소율. 그러나 인근 K마을이 10년 전에 비해 2000여명이나 감소한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늘어났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싶다.
생활이 넉넉해지면서 동네에 있는 홍동초등학교 학생수도 다른 농촌 학교와는 달리 6, 7년째 줄어들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귀농한 40대 가장의 자녀 2명이 전학을 와 오히려 학생수가 늘었다.
홍동면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은 유기농업과 공동체 의식이었다.
금평리 마을 한 가운데 대지 2000여평에 지어진 풀무생활협동조합(풀무생협) 사무실과 저온창고.
이곳에서 농민 5, 6명이 직접 재배한 무공해 야채인 쑥갓과 시금치, 열무 등을 하역하고 있었다. 도시에 있는 직거래 단체에 보내기 위한 공동작업으로 매일 오후 4시에 한다.
도시와 농촌이 건강한 먹을거리로 더불어 사는 도농(都農)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이 풀무생협의 컨셉트이다. 1953년 고 이창갑씨가 ‘농촌살리기’를 위해 이 마을에 설립한 풀무학교(전 풀무농업기술학교) 출신 졸업생들이 농산물의 공동생산과 출하를 목표로 1960년에 생협을 만들었다.
지금은 520명의 조합원이 공동출자해 운영하고 있으며 산하에 유기농생산자회, 쌀작목반, 유기농야채작목반 등의 조직을 갖추고 있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기업’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에는 유기농업생산자회에 가입한 회원 90명이 100여종의 농산물을 생산해 5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가구당 5000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렸다.
풀무생협 박종권(朴鍾權·42) 이사장은 “농민 스스로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한 생활공동체”라며 “조합원이 출자액과 상관없이 1인 1표의 의결권을 갖고 참가하는 비영리 조직”이라고 소개했다. 10년 전 유기농업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수확량이 감소되자 일부 주민이 반발한 적이 있으나 지금은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되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군(軍) 생활을 제외하고 40년을 홍동면에서 살아온 ‘젊은 농사꾼’. 올해 안으로 홍동면 전체를 ‘무공해지대’로 선포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이 지역의 또 다른 생산자 단체인 ‘영농조합법인 환경농업마을’을 이끌고 있는 주형로(朱亨魯·49)씨는 93년 문당리 9000여평에 전국 최초로 오리농법 쌀농사를 도입했다. 지금은 홍동면 전체에서 138만평이 오리로 재배되고 있다.
이 마을 이이헌(李伊憲·72)씨는 “모내기를 끝낸 6월 초쯤 오리를 논에 풀어 놓으면 벌레도 잡아먹고 배설물은 비료가 된다”며 “별도의 농약과 비료 없이 가격이 비싼 무공해 쌀도 생산하고 다 큰 오리는 내다팔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농약 비료 영결식’이란 플래카드가 내걸린 것은 6일 오리입식행사를 가질 때였다. 이 행사에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소비자 단체와 가족들까지 포함해 500여명이 찾았다. 도시의 오리쌀 소비자들을 직접 친 환경 농업 현장으로 초청해 서로의 신뢰를 쌓자는 취지였다.
공동생산과 공동출하를 통한 경제공동체뿐만 아니라 교육공동체도 홍동의 자랑거리다.
풀무학교 2회 출신인 ‘홍성신문’ 이번영 편집국장(50)은 “홍동면은 경제공동체뿐만 아니라 교육, 의식공동체를 이뤄낸 독특한 지역”이라고 자평했다. 이 때문에 홍동면은 지금도 방학 때면 대학생들이 가장 즐겨 찾는 ‘농활’ 장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마을 홍동초교 급식에도 무공해 청결미가 지원된다. 각 농가에서 오리쌀을 출하할 때 40kg들이 쌀 한 가마에 200원씩 적립한다. 이 돈으로 올해 1000만원을 지원했고 농민들의 어린 자녀들을 위해 만든 마을 근처의 ‘갓골어린이집’에도 80명이 다니고 있다. 공동체의 가장 큰 가치인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것.
주민들은 최근 홍동지역발전연구회를 만들어 2단계 발전 청사진을 만들기 시작했다.
홍동초교 최어성(崔語成·59) 교감은 “더불어 가는 생활 자세 때문에 홍동은 가장 젊은 농사꾼들이 사는 곳”이라며 “지난 3년간 10가구가 귀농해 20여명의 학생이 전학 오는 등 ‘돌아가고 싶은 농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홍성=이기진기자 doyoce@donga.com
▼풀무생협 정형영 전무
“조그만 동네 주민들이 지구환경을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정말 가능하더군요.”
충남 홍성군 홍동면 농민들의 생산자 조합인 풀무생활협동조합 정형영(鄭亨永·41.사진) 전무는 외부에서 영입된 케이스다. 경희대 재학시절 기독학생운동회 활동을 해 온 그는 학과(임학과) 특성상 농촌을 자주 돌아다니며 농촌부흥활동에 관심을 가져 왔다.
그러던 중 1989년 홍성YMCA에서 실무자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인 대전을 떠나 홍성에 정착했다.
이후 10여년 동안 이 단체에서 총무를 지내다 홍동지역에서 전개되는 농민들의 도농공동체 운동에 직접 참여하기 위해 올 2월 정기총회 때 전무 자리를 맡았다. 집도 홍성읍내에서 15km쯤 떨어진 이 동네로 옮기고 자녀 2명도 전학시켰다. 이농(離農)이 아닌 이도(離都)를 한 셈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하는 농업을 만들고 농촌을 지키자는 게 풀무생협의 꿈입니다.”
정 전무는 “농업과 농촌을 지키는 운동은 단순히 인구수를 늘리고 농업 생산량을 증가시켜 소득을 확대하는 것만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농약과 제초제,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유기농산물을 생산하고 생태계를 교란하지 않고 땅을 살리는 농업, 자연과 공생하는 생산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그는 △안전한 먹을거리를 공동생산, 가공하고 △물자를 공동구매하고 기술보급에 나서며 △시설을 공동이용할 뿐 아니라 도농간 연대사업을 지속적으로 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풀무생협에서 근무하는 7명의 상근자는 생협을 통해 판매된 유기농산물의 매출액 중 7%만을 떼내 최소 운영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같은 형태는 세계적인 키위유통업체인 뉴질랜드의 제스프리사(농가가 공동출연해 설립)가 수익금의 일부를 떼어 마케팅과 기술개발을 하는 것과 같은 시스템. 따라서 홍동 주민들은 풀무생협을 통해 농촌 공동체의 바람직한 모델을 이미 구축한 셈이었다.
홍성=이기진기자 doyoce@donga.com
▼홍동면은…
충남 홍성군 중동부에 위치한 홍동면은 14개 이(里)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은 예산군 광시면, 서쪽은 구항면, 남쪽은 광천읍 장곡면, 북쪽은 홍성읍 금마면과 접해 있다.
총 면적은 38.03km²로 농경지가 50.2%, 임야가 49.8%인 데다 대부분 200m 내외의 구릉지여서 유기 농업에 알맞은 지형이다.
삼한시대 때 감리비리국, 고려시대 때 홍주목의 결성군 홍양현, 조선시대 때 홍주목 번천면이던 것이 1914년부터 홍동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30년 전부터 유기농을 시작하며 마을 경제가 큰 변신을 하고 있다. 처음엔 정부의 지원이 전혀 없었다. 1953년 ‘평민’이라는 교훈 아래 농촌살리기 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된 풀무농업고등학교 출신들이 유기농을 조그만 규모로 시작했다. 지금은 대부분이 유기농에 매달려 양념류, 과채류, 엽채류, 가공식품 등을 생산하고 있으며 30, 40대 젊은 농가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이 지역 출신 주형로씨(50)가 1993년 전국 최초로 오리농법을 도입해 지금은 풀무생협과 환경농업마을 법인을 주축으로 130만평에서 생산하고 있다. 5월 말 현재 인구는 4625명. 지난해에는 농업기반공사로부터 농업기반 대상 단체상을 받았으며 마을에 환경농업교육관과 박물관도 갖추고 있다.
유태흥(兪泰興) 전 대법원장이 효학리, 이현재(李賢宰) 전 국무총리가 문당리, 조부영(趙富英) 현 국회부의장이 신기리 출신이어서 주민들은 ‘3부 요인이 한 마을 출신’이라며 자랑스러워한다.
홍성=이기진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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