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60…아메 아메 후레 후레(36)

  • 입력 2003년 7월 6일 17시 21분


동아유신의 드높은 외침 소리

흥하는 만주 땅도 드넓다

나부끼는 이삭 열매도 탐스럽고

온갖 보물 묻혀 있네

번영의 미래 약속하는

땅의 은혜 무한하다

민족협화의 깃발 펄럭이며

흥하는 만주 힘이 넘친다

빛나는 희망에 불타

날로 전진하는 힘찬 나라

왕도의 빛을 우러르는

민족의 광영 무궁하다*

“시끄럿! 다들 자고 있는 거 안 보여! 다시 또 부르면 창 밖으로 던져버릴 거야” 그렇게 소리치는 사냥모 쓴 남자의 목소리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낮고 갈라져 있었다.

남자는 땅콩을 깨물면서 뭐라고 투덜투덜거리다가, 다행히 잠이 든 것 같았다. 턱은 축 처지고 입은 헤벌어지고, 침에 섞여 눅진해진 땅콩은 거무죽죽한 혓바닥에 들러붙어 있고, 안쪽으로 커다란 금니가 몇 개 보였다. 소녀는 치마에 담았던 땅콩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짜증나는 산수 시간에 턱을 괴듯 창틀에 한쪽 팔꿈치를 괴었다. 공기의 냄새가 전혀 다르다, 작은 새와 벌레들의 주검, 낙엽과 썩은 나무가 몇십년 몇백년 쌓이고 쌓여 흙이 된 것처럼 풍요로운 냄새, 물 냄새도 섞여 있다, 근처에 강이 있어 그 물 냄새가 바람을 타고 오는 것이 아니다, 바람은 한 점도 불지 않으니까, 그냥 공기 냄새다. 물이 아니라 늪이다, 모닥불 피우는 냄새도 조금 난다. 따뜻하고 눅눅하고 짙고 무겁고, 입으로 빨아들이면 혀끝에 신주를 핥은 듯한 맛이 남는 대기, 소녀는 여기가 이국이라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콧구멍으로 느꼈다.

날이 밝았다. 소녀는 고개를 쭉 내밀어 땅콩을 준 남자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5시5분, 엄마하고 오빠도 나처럼 한 잠도 못 잤을 거다. 안 돼! 군복 공장에 도착할 때까지 식구들 생각은 안 할 거야! 구질구질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하늘색은 검정에서 짙은 파랑으로 변했다가 파랑이 옅어지면서 회색빛이 돌더니, 태양이 떠오르자 다시 파랑이 살아나 올려다보는 사람 모두의 마음까지 파랗게 물들일 것처럼 짙푸른 파랑으로 변했다. 소녀는 끝없이 황량한 고독감을 느끼고, 동시에 난생 처음으로 자유란 말을 의식했다. *<만주 창가집>에서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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