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말썽 부린 적이 없던 일본의 중학교 1학년 남학생(12)이 어느 날 4세 유치원생을 주차장 건물옥상에서 내던져 숨지게 했다. 동기는 ‘그냥 괴롭히고 싶었다’는 것이라 한다.
사건이 일어난 나가사키(長崎)지역 신문들은 ‘두 얼굴’을 가진 소년의 범행 소식을 9일 호외를 찍어 알렸다. TV방송사는 관할 경찰서 앞에 중계차를 대놓고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잠시도 아이들한테서 눈을 뗄 수 없다”며 불안해 했다. 충격파는 정치권에도 바로 전해졌다.
“열두 살요. 음, 쇼크군요.”
9일 사건 속보를 전해들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교육 책임자인 문부과학성 도야마 아쓰코(遠山敦子) 장관도 “뭐라 할 말이 없다”며 고개를 숙였다.
일본 열도 전체가 공포와 전율에 휩싸이면서 형사처벌 연령을 현행 만 14세 이상에서 12세로 낮추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실 형사처벌 연령은 지난해에 16세에서 두 살 낮춘 것이다. 계기는 1997년 6월 고베(神戶)에서 중학교 3학년생(14)이 이웃집 초등학교 6학년생의 머리를 절단해 학교 담장에 올려놓은 끔찍한 사건이었다. 2000년에는 17세 청소년들이 ‘이유 없이’ 살인을 저질러 ‘무서운 17세’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나이 어린 청소년들의 잔인한 범죄가 잇따르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 같은 주장이 무리도 아니다. 유럽국가의 형사처벌 연령은 더 낮다. 영국은 10세, 프랑스는 13세 이상이다.
하지만 형사처벌 연령만 낮춘다고 청소년 범죄가 사라질까. 충동적인 청소년들이 형사 처벌을 고려한 뒤 범죄를 저지를 여유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보다는 평소 모범적이고 양순한 청소년들이 ‘왜’ 그렇게 돌변하느냐는 것이 문제다. 겉으로는 부족한 것 없는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지만 실제로는 청소년들의 정신문화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또 너무나 정교하게 짜여져 질식할 것 같은 사회문화적 구조가 청소년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청소년들이 기를 펴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사회 문화의 틀을 갖추는 것은 일본만의 과제는 아닐 것이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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