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회장은 1970년대에 코카콜라 병입회사인 호남식품에서 근무할 때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당시 공장에는 고교를 갓 졸업한 어린 여성 근로자들이 많았는데 12시간씩 맞교대로 근무를 했답니다. 뽀얗게 얼굴이 피어 있어야할 직원들이 근무를 끝내고 돌아갈 때면 얼굴이 ‘누렇게’ 떠 있는 모습을 보고 많이 안타까웠다는 겁니다. 8시간-3교대 근무를 제안했지만 직원들은 월급이 줄어들 것을 걱정해 한사코 반대했다는군요.
작년에 회사 경영이 좋지 않아 100% 보너스를 삭감하면서 올해 지급하겠다고 했는데 얼마 전에 그 약속을 지켜 흐뭇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지갑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로 코팅이 된 종이쪽지를 꺼내 보였습니다. 쪽지에는 약속은 무조건 지킨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3가지 수칙이 적혀 있었습니다. 호남식품에 근무할 때 직접 코팅을 해서 직원들에게 나눠준 것이랍니다.
김 부회장이 운이 좋다는 건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기 때문입니다.
61년 군인 시절 30여명의 군인들과 휴가병을 실어나르는 트럭을 타고 나오다 한탄강 아래로 추락했는데 김 부회장만 살아 남았답니다.
두 번째는 1978년 대한항공 여객기가 옛 소련 상공에서 ‘영공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소련 전투기에 사격을 당한 뒤 인근 호수에 동체착륙을 했을 때라고 합니다. 이때 소련 전투기가 가한 사격으로 몇 명의 승객이 사망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자신과 자리를 바꾼 사람이었답니다.
김 부회장과 헤어져 나올 때 어쩐지 저는 마음이 참 훈훈했습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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