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한복룡/'新 대동여지도’를 만들자

  • 입력 2003년 8월 4일 18시 56분


1861년(철종 12년) 고산자 김정호(古山子 金正浩) 선생은 백두대간, 1정간(正幹), 13정맥(正脈)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여지도를 완성했다. 이는 현재 보물 제850호로 지정돼 있는 축척 16만분의 1 지도로, 그 당시 우리 조상들의 지리적 지식이 총동원된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도를 보면 우리 선조들의 지도제작 능력과 자연을 이해하는 지리철학이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지식정보화시대라 일컫는 오늘날에도 우리는 대동여지도에서 파악되고 있는 핵심 지리사상을 복원하지 못하고 일제강점기 도쿄대 지질학 교수였던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郎)가 한반도의 지질구조 및 광물 분포도에 따라 창안한 산맥 개념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북한은 이미 백두대간을 지리서에 복원하고 있음을 상기할 때, 상대적으로 풍요로움을 즐기고 있는 우리의 풍토에서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를 직감케 하는 대목이다.

지리학과 지질학은 전혀 시각이 다른데도 역사나 지리학에서 대동여지도의 지리 개념을 버리고, 고토 분지로의 지질학적 산맥 개념을 아직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애석한 일이다. 광복 60년이 가까워 오고 있는데도 일제에 의해 왜곡된 지리 개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 학문 경향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는 백두대간상의 산, 예컨대 강원 동해시의 자병산, 석병산을 석회석 개발을 이유로 송두리째 잘라버리거나 정맥상의 고개, 예컨대 천안 삼거리에서 독립기념관으로 넘어가는 고개 위에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짓는 등 무모한 훼손행위를 막지 못하고 있다.

대동여지도는 이런 의미에서 우리 민족의 문화적 창작품 중에도 걸작에 속한다. 이른 시일 안에 백두대간 개념을 교과서에 올려 가르칠 필요가 있음은 물론 백두대간 보전법도 꼭 제정해야 한다.

이제 21세기 문화관광의 세기, 첨단정보화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새로운 시각에서 대동여지도를 창안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호남정맥에서 영암 월출산을 거쳐 땅끝에 이르는 지맥을 ‘땅끝지맥’이라 이름붙인다거나, 운장산-대둔산-계룡산을 지나는 금남정맥에서 인대산-만인산-식장산-계족산으로 뻗어나가는 지맥을 ‘한밭지맥’으로 명명하는 등 각 지역의 지리적 특성을 밝혀 지역개발의 기초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지리적 특성, 동식물의 생태계, 하천의 발원지와 활용 가능성 등을 인터넷을 통해 공유함으로써 지역의 문화발전과 연계시킬 수도 있다.

농경지보다는 아름다운 산과 환경의 가치가 커지고 있는 시대다. 중앙집권시대에서 지방분권시대로 이행되면서 각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의 특성에 맞는 개발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와 수요에 부응해 지맥들에도 이름을 붙이고 각 지방자치단체의 특수성과 상징성을 살리는 데 활용한다면 환경 및 문화의 세기에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관광산업을 활성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차제에 학계와 지방자치단체, 중앙정부가 참여하는 ‘백두대간 학회’를 만드는 것도 신대동여지도 창조를 위해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이는 김정호 선생의 후손인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한복룡 충남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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