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인구분포 변화…산업지도 명암

  • 입력 2003년 8월 21일 17시 54분


《“분유 판매 감소. 주름살을 펴주는 ‘마법의 주사’ 보톡스 열풍. 둘 사이의 공통점은?”

정답은 ‘인구분포의 변화에 따른 현상’이라는 점이다. 출산율 저하, 급격한 노령화, 전후(戰後) 베이비 붐 세대의 30대 후반 진입 등 인구분포의 굵직굵직한 변화는 사회의 구성과 특성을 바꿔버린다. 그렇다면 국내 산업지도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낮아진 출산율, 비상 걸린 유아제품 생산업체=국내 분유 시장 1위 업체인 남양유업은 최근 불가리스 등 발효유와 우유에 대한 마케팅을 부쩍 강화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매출의 주축을 이뤘던 분유부문 매출이 출산율 저하로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 남양유업의 경우 분유는 그동안 전체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효자상품 역할을 했다. 그러나 매년 2000억원 넘게 매출을 올렸던 분유 부문은 이제 1600억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 같은 사정은 매일유업 등 다른 업체도 마찬가지. 분유업체들은 출산율이 떨어지자 ‘임페리얼 드림’(남양유업) ‘앱솔루트 명작’(매일유업) 등 고급 브랜드 분유에 승부를 걸었지만 출산율 하락폭이 너무 커서 시장위축이라는 대세를 거스르지 못하고 있다.

출생인구는 99년 61만명, 2000년에는 밀레니엄 베이비 붐으로 일시적으로 64만명으로 늘었으나 2001년 60만명, 2002년 55만명으로 급감한 데 이어 올해에는 50만명으로 전망된다.

유아용품 업계 1위인 아가방도 출산준비용품의 판매가 줄자 고가 유아복 매출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올 4월에는 디자이너와 함께 기존 아가방 브랜드에 비해 가격이 15% 정도 비싼 에뜨와 브랜드를 내놓기도 했다. 수요 감소를 고급화로 극복하려는 전략이다.

출산율 저하는 ‘대학교육 시장’에도 한파를 가져왔다. 지난해 입시에서 5, 6개 대학이 신입생 모집정원의 50%를 채우지 못했으며, 충원율이 70%를 밑도는 대학이 30여개에 이른다.

이 같은 현상은 출산율 저하에 따른 고교 3학년 학생수의 감소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올해 고3 학생수는 60만8000명으로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을 합친 신입생 모집정원 67만여명에 비해 훨씬 적다.


▽베이비 부머의 힘=보통 신생아 출생 붐은 전쟁 직후에 일어나는 것이 보통. 미국의 경우 1946년부터 65년까지 출생한 7500만명이 성장함에 따라 1950년대 일회용 기저귀 및 패스트푸드 산업의 탄생, 70년대 주거용 부동산의 급등 등의 현상을 가져왔다.

국내에서도 1953년 이후 신생아 출생 붐이 일면서 한때 가임 여성 1인당 출산율이 6명에 이르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인구 성장률이 2.8%에 이르렀다. 이들 베이비 부머들은 생산의 주체로서 경제성장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소비 주체이기도 했다.

삼성증권 김학주 애널리스트는 “90년대 한국에서 승용차 시장이 급격한 성장세를 보인 것은 이들 베이비 부머들이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일제히 자동차를 구입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에 30대 후반으로 진입한 이들이 자동차 구입을 마무리하면서 내수 시장 성장세가 둔화됐다는 것.

▽한국 경제의 ‘덫’ 노령화=한국인구문제연구소 박은태 소장은 한국은 이미 2000년에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2019년에는 고령사회, 2026년에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대우증권 조용준 애널리스트는 이 같은 급격한 노령화가 제조업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그는 “한때 최고 수준이었던 일본 조선업체가 경쟁력을 잃은 것은 근로자들의 평균연령(현재 55세)이 높아진 것과도 관련이 있다”며 “한국에서도 자동차 조선 등 핵심 제조업 종사 근로자들의 고령화는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현대자동차 근로자의 평균나이는 38세, 현대중공업은 43세에 이른다.

▽실버산업, 언제 뜨나=아직까지 국내에서 실버산업은 ‘산업’으로서 뜨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경제연구소 고정민 수석연구원은 “베이비 부머들이 본격적으로 연금혜택을 받는 2010년경부터는 실버산업 규모가 커질 것”이라며 “만약 그때 현재 1만달러 수준인 국민소득이 2만달러로 높아지면 실버산업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이경희 소장도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이미 상당한 자산을 갖고 있는 베이비 부머들이 노령층에 본격 진입한다”며 “그 시점이 돼야 다양한 형태의 실버산업이 붐을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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