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北 “민족공조” 요구 대비책 美와 협의▼
한국 수석대표인 이수혁(李秀赫)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1997∼99년의 4자회담 때도 대표단에서 활동했다. 올 3월 차관보로 임명된 뒤에는 한미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TCOG)의 한국 대표를 맡아 왔다. 미국과 일본의 수석대표가 TCOG의 카운터파트여서 한미일 공조를 유지하는 데 적임이라는 평가다.
6자회담에 임하는 한국 정부의 공식 방침은 ‘대화를 통한 북한 핵문제의 원만한 해결’이다. 하지만 북한과 미국이 팽팽히 맞설 경우 한국은 ‘민족’과 ‘동맹’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북한이 완강하게 버티면 북한을 배려해 오히려 미국에 체제보장 등 추가 양보를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해외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북한으로서는 6자회담 구도를 ‘미국 중국 일본’ 대 ‘북한 한국 러시아’로 볼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도 “한국은 북한과 같은 민족이기도 해서 일본과는 시각이 다를 수 있다”고 말해 대북정책에 차이가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남북한의 비공식 접촉이 이뤄지고, 북측이 ‘민족 공조’를 요구할 경우에 대비한 ‘한미 공동의 시나리오’도 준비해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북한…불가침 확약요구… 추가회담엔 응할듯▼
북한측 수석대표로는 차관급인 김영일(金永一) 외무성 부상이 나선다. 북한 외교부의 중국 아시아 담당 최고책임자이지만 리비아대사를 지내는 등 ‘아프리카통’으로 알려져 있어 다소 의외의 인선이라는 평.
이달 초 북한을 방문한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6자회담 일정을 조율하는 등 대(對) 중국 창구 역할을 맡고 있어 발탁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의 핵 협상은 처음이다. 이 때문에 그의 기용은 기존의 원칙론을 견지하면서 미국의 태도 변화를 지켜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북한은 최근 외무성 담화를 통해 △북-미 불가침 조약 체결 △북-미 외교관계 수립 △북한과 타국간의 경제협력 불간섭 등 기존 요구사항을 거듭 강조했다. 최태복(崔泰福) 최고인민회의 의장도 21일 중국 공산당 대표단에 “미국이 불가침을 약속하기 전에는 핵사찰 문제를 논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양보 불가’를 강조했다.
북한은 회담 막바지까지 이런 태도를 고수하겠지만 먼저 회담을 결렬 쪽으로 몰아가지는 않을 것으로 북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스즈키 노리유키(鈴木典幸) 일본 라디오프레스 이사는 “북한이 ‘버티기’로 일관하겠지만 다자회담의 틀 자체가 체제 보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추가 회담 개최에 동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미국…對北 강온 양면전략… 러 태도에 촉각▼
미국의 수석대표는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로 정해졌다. 대북한 강경발언으로 북한의 거센 반발을 초래한 존 볼턴 차관 대신 온건파인 켈리 차관보가 나선 것은 이번 회담을 가급적 원만하게 진행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금까지 북-미 직접대화를 단호히 거부해 왔지만 최근엔 양측 대표가 별실에서 따로 만나는 형태만 아니라면 ‘양자 접촉’에 응할 수도 있다는 뜻을 비쳐 왔다.
국방부를 중심으로 한 대북 강경파가 한발 물러선 가운데 국무부 라인의 대화론자들이 일단 6자회담 전략을 주도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불가침조약 체결 불가’와 ‘핵무기 완전 폐기’라는 기본 방침은 변하지 않았다. 회담장 밖에서는 북한을 겨냥한 해상 봉쇄 훈련(9월)으로 압력을 가하면서 회담장 안에서는 ‘문서화된 형태가 아니라면 불가침을 확약하는’ 정도까지는 양보하는 등 강온 양면의 전략을 쓸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미국은 이번 회담에서 구체적인 결론을 기대하기보다는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 후속 회담 개최에 합의하는 것만으로도 성과라는 분위기. 다만 북한의 요청으로 갑자기 6자회담에 참가하는 러시아가 북한을 옹호하면서 회담 분위기를 교란시키지는 않을까 신경 쓰고 있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중국…가시적 성과 얻으려 끝까지 중재역할▼
중국은 3자회담을 6자회담으로 확대하고 회담 대표 지위도 한 단계(차관급) 올려 회담 성과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회담 대표인 왕이 부부장은 ‘미국과의 양자회담만 끝까지 고집하면 이제는 우리도 모른다’며 북한에 으름장을 놓았다. 한편으로는 미국에 대해서도 ‘쥐(북한)도 궁지에 몰리면 문다’고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이후 지켜온 국제 문제 불개입이란 외교원칙을 이번에 깼다는 평을 얻을 만큼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에 힘을 쏟고 있다.
따지고 보면 북한의 핵 개발은 중국에도 전략적 타격이 되므로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물론 북한이 핵 카드를 쉽게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중국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6자회담을 성사시킨 개최국 체면도 있어 이번 회담에서 적어도 평화해결의 초석을 만들어 내기 위해 마지막까지 중재 역할을 할 전망이다.
지난번 3자회담처럼 흐지부지 끝나면 미 정부 내에 강경파가 득세하게 되고, 그 이후 벌어질 사태는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중국의 뜻과 다르게 된다. 중국이 미국 편을 들어 ‘대북 제재 카드’ 사용을 주장하는 일본을 말리는 한편 일본인 납치 문제를 다룰 북-일 양자회담(28일)을 주선하고 나선 것도 이런 사정에서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일본…자국인 납치문제 진전이 실질적 관심▼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局) 야부나카 미토지(藪中三十二)국장이 대표로 참가한다. 지난해 9월 17일 북-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전임 다나카 히토시(田中均)심의관만큼 그가 앞으로 대북 창구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시험받는 무대이기도 하다.
일본은 이번 회담에서 핵 문제와 함께 피랍 일본인의 북한 내 가족 송환과 피랍 후 북에서 숨진 이들의 사망 경위 등 이른바 납치문제를 동시에 다루려 한다.
일본의 이런 태도에 대해 특히 중국 러시아는 “자칫 회담 자체를 그르칠 수 있다”며 회의적 시각을 보여 왔다. 이에 따라 일본은 납치문제는 다자간 회담석상에서 상징적으로만 언급하고 구체적 해결책은 회담기간 중인 28일 북한과 따로 만나 논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가 북한의 핵 포기 단계에 맞춰 경제원조 등을 실시하는 ‘로드맵(일정표)’ 방식을 추진하려는 데 대해 일본은 반대한다. 일본은 미국과 발을 맞춰 북한의 즉각적 핵 포기시 포괄적 지원을, 불이행시에는 제재 카드를 활용하자는 입장이다.
일본은 이번 회담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확실한 결론이 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면서 내심 납치 문제에 관해 진전을 이루는 것을 현실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러시아…中 영향력 확대 견제하려 北 옹호할듯▼
막판에 극적으로 6자회담 참석권을 얻어낸 러시아의 수석대표는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외무차관이다. 로슈코프 차관은 그동안 러시아가 북핵 다자 논의 구도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로슈코프 차관은 1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특사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했고, 최근에도 서울과 모스크바를 오가며 한국 외교라인을 모두 만났다. 궁석웅 북한 외무성 부상과도 만나 6자 회담 사전정지 작업을 했다.
북핵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기본적인 입장은 한반도의 비핵화 지지와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으로 요약된다. 미국과의 불가침조약 체결을 바라는 북한의 주장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다. 북한 미국 중국간에 체결된 6·25전쟁 정전협정이 변경되는 것 자체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측면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효과를 거두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북한의 결정적인 지원으로 6자회담 참여가 성사됐기 때문에 회담장에서 북한을 적극 옹호하고 나설 가능성이 많다.
경제 현안인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결과 에너지 개발 사업을 적극 추진하기 위해서 한반도의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어서 북핵 사태가 조속히 마무리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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