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파리시 보건담당 공무원들은 노인 사망자의 연고를 찾느라 바쁘게 번호판을 눌렀다. 아직 끝나지 않은 바캉스 시즌, 그것도 일요일에 공무원들이 일하는 것은 프랑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더욱 상상하기 힘들었던 올 여름 폭염 인명 피해가 공무원들을 전화통 앞에 붙잡아 놓았다.
노인 사망이 급증하자 시 당국은 교외에 임시 시체안치소를 마련했다. 그것도 모자라 대형 냉동트럭까지 동원했다. 수십대의 냉동트럭이 시신 부패를 막기 위해 냉동장치를 가동하느라 엔진을 켜놓고 있는 모습이 TV에 방영됐다.
이처럼 임시로 모신 시신은 아직 연고가 나타나지 않은 300여구. 전국적으로는 1000구에 육박할 것이란 게 프랑스 언론의 추산이다. 이처럼 많은 시신이 방치되는 것은 바캉스 때문. 바캉스에서 돌아오지 않은 가족이나 친척이 사망 사실 자체를 모르거나 알아도 바캉스는 끝내고 장례식을 치르려 하기 때문이라고 시 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프랑스는 서구 선진국에서도 의료시스템이 잘돼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 나라에서 1만명가량의 대규모 폭염 사망자가 난 것은 보건상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학적인 문제라고 지적하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가족관계 단절로 혼자 사는 노인이 많은데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바캉스만은 방해받지 않겠다는 일반 정서가 외로운 노인들을 찜통 속에서 죽어가게 했다는 것. 실제 거동이 불편한 많은 노인이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불가마 더위에 아파트 창문도 제대로 열지 못하고 있다가 변을 당했다.
일간지 르파리지앵은 24일 파리시가 이미 50구의 무연고 시신을 한 구덩이에 매장했다는 흉흉한 보도까지 했다. 시 당국은 이 보도를 부인하면서 무연고 시신도 개별 매장해 나중에 가족이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당국은 통상 6일의 무연고 시신 안치 기간을 10일로 늘리면서까지 애타게 연고자를 찾고 있지만 아직 많은 시신이 차가운 냉동고 속에 버려져 있다. 도무지 닮고 싶지 않은 서구 복지사회의 그늘이다.
박제균 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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