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참회록 그 이후]“일그러진 자화상…희망도 보았다”

  • 입력 2003년 8월 31일 19시 35분


지난달 20일부터 10회에 걸쳐 본보에 연재된 ‘정치인 참회록’에 대해 독자들은 대체로 ‘정치발전을 위한 용기 있는 자기고백’이란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그동안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던 정치인들의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증폭시켰다는 비판론도 제기됐고, 자기 참회를 쏟아낸 일부 의원들은 지역구민들의 비판을 사는 등 역풍(逆風)에 부대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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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를 감수한 자기고백 득실 논란=21일자에 실린 민주당 김택기(金宅起) 의원의 ‘지역구의 노예’(2회)라는 고백에 대해 상당수 독자들은 전화와 e메일을 통해 “술판이나 경조사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현실과 입법·정책 개발에 매진해야 하는 이상 사이의 고뇌를 솔직하게 토로함으로써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보다 실증적으로 알 수 있었다”는 격려 의견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그는 지역구민들로부터 “지역구민을 ‘술이나 권하는 사람’으로 비치게 했다”는 반발이 쏟아져 뜻밖의 곤욕을 치렀다는 후문이다.

한나라당의 임인배(林仁培) 의원이 고백한 ‘몸싸움 전위대’(3회)에 대해 민주당의 한 재선의원은 “국회에서 몸싸움에 내몰리는 선량으로서의 자괴감을 토로한 것을 보고 새삼 우리 정치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저격수의 비애’(4회)를 토로한 장전형(張全亨) 민주당 부대변인에겐 ‘고통을 함께 나누자’며 선거법 위반 소송에 따른 변호사 비용을 십시일반으로 돕겠다는 ‘온정’이 답지하기도 했다.

반면 ‘돈 안 받고 안 쓰기’로 유명한 한나라당 신영국(申榮國) 의원(6회분)은 “정치인들이 빠지기 쉬운 돈의 유혹을 일반론을 전제로 소개했는데 모두 내 ‘비리 자백’처럼 비쳐 지역구민들로부터 ‘실망했다’는 항의가 빗발쳤다”고 호소했다.

한편 한나라당 송광호(宋光浩) 의원(9회분)이 국가예산 심의를 누더기로 만드는 등 ‘국회의원으로서의 배임행위’를 했다고 자백한 데 대해 한나라당의 한 경쟁 후보는 본보 취재진에 전화를 걸어 “지역구민들에게 역설적으로 박수를 받기 위한 고도의 언론플레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줄 잇는 참회 신청과 제보=참회록 시리즈의 여파로 서울 여의도 정가에선 요즘 ‘참회하시죠’라는 유행어가 등장했다. 28일 오후 민주당 당무위원회의 도중 잠시 기자실에 들른 이훈평(李訓平) 의원은 본보 시리즈의 주된 소재였던 ‘검은 정치자금’ 투명화 문제에 관해 언급하다가 기자들이 일제히 “의원님도 참회하시죠”라고 말하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다. 이 의원은 역으로 “한국 정치의 잘못엔 언론의 책임도 있다. 이번 참회록에 ‘기자의 참회’는 없느냐”고 물으며 ‘언론과 정치의 책임 분담론’을 펴기도 했다.

이 의원과 대조적으로 “나도 참회하겠다”거나 “누구누구를 참회시켜야 한다”며 지면 할애를 요청해오는 정치인도 적지 않아 교통정리에 애를 먹기도 했다.

민주당의 한 핵심당직자는 “보스정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복잡한 계보 사이를 줄타기 해온 일그러진 내 모습을 참회하겠다”고 의사를 밝혀 중진들을 긴장시키는가 하면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문고리 권력’으로 부패정치에 기생해온 보좌관 C씨를 등장시키라”고 주문했다. 반대로 ‘철새’ 논란을 빚었던 한 의원은 ‘참회록’ 동참을 권유받고 며칠 동안 밤을 새우다시피 고민한 끝에 “마음의 준비가 안 돼있다”며 다음 기회로 미루기도 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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