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근무시대]<2>산업계 파장

  • 입력 2003년 8월 31일 19시 35분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K사의 B사장은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 인건비는 더 오르고 인력난은 심해질 것이다. 이제 사업을 그만두든지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기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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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G여행사 P사장은 새로운 사업계획 구상으로 바쁘다.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 산업계는 업종에 따라 명암이 엇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관광이나 레저, 극장, 게임 업종은 늘어난 수요로 희색을 띠는 반면 노동집약적인 중소제조업과 서비스업은 인력난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주말을 이용해 괌이나 푸케트 등을 찾는 가족여행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다른 여행사와 차별되는 프로그램을 짜내기 위해서다.”

주5일 근무제 도입에 따라 산업별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인건비 비중이 높은 노동집약적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은 비용 증가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 반면 여가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여행 외식업 전원주택 등은 호황의 꿈에 젖어있다.

▽늘어나는 기업부담=주5일 근무 시행으로 임금은 2.74∼22%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전경련이 7월 기업인 126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주5일 근무제 시행으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9% 정도 늘어날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182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인건비 복리후생비 등 제반 비용이 평균 20% 상승하고, 제품단가도 16% 정도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자본집약적 대기업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은 반면 노동집약적 중소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은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근로조건 격차가 더 벌어져 중소기업 기피 현상이 심해짐으로써 인력난이 가중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공기를 줄이기 위해 휴일에도 공사를 계속해야 하는 건설업은 휴일수당을 더 지급하게 돼 전체 공사비가 더 들 수밖에 없다. 365일 공장 설비를 돌려야 하는 석유화학 및 화섬업계도 휴일근무수당이 추가 발생한다.

▽성장하는 산업=관광·레저 산업이 특수를 누릴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관광협회중앙회는 올해 3억4000만명이던 국내 관광객 수는 내년에 3억7400만명, 2005년에 4억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호텔업계는 여행사와 손을 잡고 제주, 강원 등 유명 여행지와 연계해 2박3일이나 3박4일 상품을 속속 내놓고 있다. 일본, 사이판, 괌 등지에서 금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새벽까지 즐길 수 있는 ‘도깨비 여행’ 상품도 선보이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앞으로 레저용 차량(RV) 수요가 늘 것으로 보고 장기적으로 RV 개발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고정민 수석연구원은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 극장 관객은 10% 정도, 게임 음악 방송 비디오 등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약 5%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주5일제 시행으로 68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했다. 또 근로자가 여가를 활용해 직업능력을 계발하고 레저·관광 등 새로운 산업이 발달하면 국내총생산(GDP)은 4.7%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의 주5일 근무제 시행 추이
연도월1회 이상 토요일 휴무토요일 격주휴무주5일 근무
1993년 이전-LG그룹 일부 계열사외국인 투자기업 대부분
1996년-현대 대우 두산그룹-
2001년-삼성그룹LG그룹 주요 계열사(본사 및 연구소와 사무기술직)
2002년행정기관 시범실시(3월)-은행권 전체, 서울시와 산하기관(7월), 증권업계(8월)
2003년--삼성 한화그룹(5월), 포스코 손보업계(6월), 금속산업(7월)
자료:삼성경제연구소

홍찬선기자 hcs@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달라지는 직장풍속도▼

세계적 회계법인인 KPMG 뉴욕 본사에서 근무하는 김옥진 부장(39)은 점심 식사하러 갈 때 비서에게 나간 시간과 들어온 시간을 확인시킨다. 미국계 금융회사에 다니는 L씨(34·여)는 아이가 아파 병원에 갈 때면 반드시 휴가원을 낸다.

임금이 일한 시간에 따라 결정되므로 근무시간 중에 일하지 않은 시간은 빼기 위해서다. 미국 회사들은 주5일 근무제로 토, 일요일은 쉬지만 월∼금요일의 근무시간만큼은 개인적 용무를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다.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는 내년 7월부터 한국 기업의 근무행태도 이렇게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줄어든 근무시간을 생산성 향상으로 벌충하기 위해선 노동강도를 높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음한 다음날 출근부에 도장만 찍은 후 사우나에 가서 1∼2시간 쉬거나, 친구나 가족과 사적인 전화를 오래하는 일은 계속되기 힘들어 보인다. 아는 사람이 찾아와 근무시간에 사무실 근처 커피숍에 가서 얘기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삼성전자와 현대중공업 등이 실시하는 집중근무시간제가 더욱 확산될 것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오전 9시30분∼11시30분과 오후 1시30분∼3시30분, 현대중공업은 오전 9시30분∼11시를 집중근무시간으로 정해놓고 이 시간대엔 함부로 사무실을 뜨지 못하게 한다. 이 시간에는 전화 받는 사람을 별도로 지정해 업무 관련 외에는 외부에서 걸려오는 전화도 바꿔주지 않는다.

주5일 근무제로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의 과음은 자제하게 되고, 회식날도 금요일에서 목요일이나 수요일로 앞당겨진다. 금요일 저녁은 토, 일요일을 가족과 알차게 보내기 위해 가급적 아껴둬야 하기 때문. 삼성그룹은 5월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면서 매주 금요일을 ‘가정의 날’로 정했다. 회식이나 야근 없이 일과가 끝나면 바로 퇴근한다. 휴식하며 재충전하거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도록 배려하는 것.

월요병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먼 곳을 다녀오느라 일요일 저녁까지 시달린 사람들은 빡빡해진 근무 분위기 속에서 하루 종일 피로감을 하소연할 수 있다. 신한은행이 주5일 근무제 시행 1년을 맞아 직원 40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주5일 근무제 도입 이후 월요병이 늘었다’는 직원이 40%에 달했으며 업무부담이 커졌다는 비율도 70%였다.

홍찬선기자 hcs@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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