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주택가에 가면 ‘홈 디포(Home Depot)’라는 커다란 상점이 꼭 있다. 주말이면 홈 디포는 활기를 띤다. 집안 구조물이나 가구 등을 만들기 위해 각종 재료를 구입하러 오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에 반해 주말 가족 여행은 평균적인 미국 가정에서 흔치 않은 일.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여행보다는 공원에서 스포츠를 하거나 집에서 바비큐 파티를 즐긴다.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되면 한국인들의 여가 활동은 어떻게 변할까. 전문가들은 종전의 ‘노는 형’에서 선진국들과 비슷한 형태인 ‘쉬는 형’으로 바뀔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정운(金珽運·41·명지대 대학원 여가정보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금전 소비형’ 여가 행태를 보였지만 앞으로는 ‘시간 활용형’으로 바뀔 것”이라며 특히 “동호회 활동이 크게 늘어 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레포츠업체인 넥스프리의 정창수(鄭彰洙·40)대표는 “기업이 앞장서서 사원들에게 각종 레포츠 프로그램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행업계 기대 반 걱정 반=여행업계는 여행 수요가 늘기는 해도 폭발적인 증가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여행은 비용문제뿐 아니라 항공 좌석 수에 한계가 있기 때문. 국내여행도 단체여행보다는 20, 30대 손수 운전자들의 경우 자유여행을 더 선호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부분의 여행사들은 여름휴가철에 집중됐던 여행 수요가 사계절로 분산될 것으로 보고 2, 3일 일정의 다양한 주말 여행상품 개발에 한창이다.
▽레포츠업계 특수 기대=이미 지난해부터 각종 레포츠상품을 연계한 금융상품이 등장할 정도로 레포츠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신용카드회사들은 가입만 하면 각종 레포츠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할인 혜택도 주고 있다. 레포츠업계는 수상스키 래프팅 암벽타기 윈드서핑 등 이미 알려진 것 외에 신종 레포츠 상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프로스포츠 함박웃음=프로농구 프로야구 프로축구 등 프로스포츠업계는 관중이 크게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벌써 ‘금요일 관중이 얼마나 될지’에 대한 여론조사에 착수했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현재 토, 일요일에 집중되어 있는 경기 일정을 조정한다는 계획이다. 금요일을 휴식일로 잡았던 프로축구와 남자프로농구 등은 금요일 경기 신설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생활체육시설 확충 시급=미국 유럽 등엔 동네마다 테니스코트 농구코트 인라인하키링크 풀밭야구장 잔디축구장 등을 갖춘 공원이 있어 누구나 원하면 손쉽게 운동을 즐길 수 있다. 인구 비율에 따라 수영장 녹지 운동장 등의 적정 면적을 산출하고 이를 그대로 적용한다. 일본은 87년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면서 10년간 전담 부서를 운영했다. 반면 한국은 시설이 크게 부족해 즐기고 싶어도 즐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주5일 근무제에 따른 건전한 레저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기초자치단체 별로 생활체육공원 등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안영식기자 ysahn@donga.com
▼주말농장 해보니…▼
지난해 12월부터 격주로 토요일까지 쉬게 됐다. 내게는 ‘환상적’이었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함께 뛰어놀고 집 근처 사우나를 찾는 여유도 생겼다.
하지만 그런 호사도 잠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내가 빈둥거리며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 같았다. 또 쉰다고 해봐야 나 혼자 쉬는 것일 뿐 가족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문득 우리 가족 모두가 참여하는 ‘즐거운 생활의 쉼표’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족여행 공연관람 등 어쩌다 한 번 즐길 만한 이벤트는 일시적인데다 경비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던 중 회사의 ‘주말농장’에 눈길이 갔다. 농장은 회사가 연수원 근처에 확보한 농지인데 사원들에게 텃밭 8평씩 빌려주고 농사 지도도 한다. 또 사원 가족들이 농장에서 일하는 동안 연수원에서 무료로 숙식 제공은 물론 스포츠 댄스와 특강 등 다채로운 가족 프로그램까지 운영한다.
우리 가족은 5월부터 주말농장에서 상추 고추 등을 재배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가족이 한달에 두 번씩 주말을 농장에서 보낸다. 자연스럽게 가족간의 대화가 활발해졌다. 씨앗에서 싹이 돋고 막 딴 상추가 식탁에 오르면 우리는 농장 일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지난달엔 고추와 가지, 이달에는 들깻잎을 수확했다. 집사람은 농장에서 따온 야채를 옆집에 나눠주며 노동의 가치와 휴식의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나는 휴식 뒤에 찾아오는 재충전의 뿌듯함을 느낀다. 휴식에도 품질이 있다는 사실, 휴식을 ‘레크리에이션’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이제 이해하게 됐다.
김예철 (38·신세계 백화점 신규사업 담당 문화 서비스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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