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15…1944년 3월3일(3)

  • 입력 2003년 9월 9일 16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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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란데, 와 도망쳤을꼬. 작년 12월에서 올 11월 사이에 스무살이 된 남자들만 징병되는 거 아이가.”

“그걸 바로 얼마 전까지 몰랐다 아이가. 마흔살까지는 다 끌려간다는 소문이 나돈 때도 있었고.”

“한방집 기운이한테 징병 검사 통지서가 나왔다더라.”

“빨간 종이가?”

“빨간 종이 아니고, 흰 종이다. 기운이 어머니가 직접 보여줬으니까네 틀림없다. 아침에 군청에서 병사 담당이 나와서, 기운이가 이름을 썼더니 그 자리에서 반 뚝 잘라 가지고 갔다 카더라.”

“우리 맏아들이 5월이면 스무살인데, 나이를 좀 속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이구, 군청에서 호적 관리하고 있는데, 무슨 수로 나이를 속이겠노.”

“징병 검사에서 떨어지면 되재. 피마자기름을 잔뜩 먹이면 어떻겠노.”

“아이구, 몸이 우예 되라꼬.”

“몸이야 고치면 안 되나. 뼈가 되어 돌아오면 고칠 수도 없다 아이가. 어연간히 나빠서야 군의의 눈을 속일 수 없으니까네, 진짜 병이 드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만에 하나, 검사 날에 중병으로 드러누운 자는 들것에 실려서라도, 걸을 수 없는 자는 돌부리를 잡고 기어서라도 검사장에 갈 각오를 하고 있으라고 반장이 그랬다 아이가.”

“그라문 숨기는 수밖에 없겠다.”

“어디다 숨기겠나, 만날 경찰이 오는데.”

“집안에 딱 숨어 있다가, 경찰이 오면 항아리 속에라도 숨어야재.”

“그랬다가는 아버지가 헌병대에 끌려가서 고문당할끼다. 못 들었나, 이발소 종휘 얘기. 술집에서 취해가지고 아리랑을 불렀더니 이튿날 아침에 헌병이 와서, 사상이 불순하다고 고문하더라 안 카더나.”

“시형이는 동생이 상하이 의열단에 있어서, 벌써부터 미행당하고 있다.”

“손톱에 대바늘 쑤셔넣고, 시뻘건 인두로 어깨하고 목을 지지고, 자기 살 타는 냄새에 정신 잃었다 안 하더나. 가족하고 친척 할 것 없이 모두 비국민, 불령선인(不逞鮮人) 소리 들으면서 경찰에 미행당하고, 배급도 못 받게 된다.”

“밀고하면 배급이 늘어나니까, 밀고하는 인간도 많다.”

“누구를 믿겠노.”

“며느리한테도 속내는 말 못 한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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