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부는 이번 각료회의가 결렬됐다 하더라도 도하개발어젠다(DDA)협상이 끝나는 것이 아닌 만큼 후속 협상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에 따른 2004년 쌀 재협상을 앞두고 있어 농업 개방을 요구하는 파고(波高)가 계속 거셀 것으로 보고 있다.
최정섭(崔正燮) 농림부 농업통상정책관은 “각료회의가 결렬됐지만 내년 말로 예정된 전체 협상 시한은 유효하다”며 “특히 한국에 불리한 내용을 담아 13일 발표된 농업부문 초안은 앞으로 협상의 토대가 되는 만큼 다각적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농민단체들은 “이번 각료회의 결렬은 반(反) 세계화 운동가들이 투쟁한 결과”라며 한국정부 대표단의 ‘협상력 부재(不在)’를 비난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이날 발표한 ‘WTO 협상에서 농업을 제외하라’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이번 각료회의 결렬은 인류의 다양하고 소중한 가치를 지키려는 양심들이 만들어낸 투쟁의 결과”라며 “노무현(盧武鉉) 정부는 한국 농업이 회생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정책을 수립하라”고 주장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도 성명서를 통해 “이경해(李京海) 전 회장의 희생을 우리 정부 대표단은 협상 과정에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며 “정부는 12월 15일로 예정된 WTO 특별 각료회의에서는 이 같은 전철을 밟지 말고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싱가포르 이슈란▼
제5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결렬된 직접 원인은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의 핵심 쟁점인 농업 부문이 아니라 ‘싱가포르 이슈’였다.
회의 마지막날인 14일(현지시간) 최종 협상에서 ACP(아시아 카리브해 및 태평양) 그룹 78개 국가들이 싱가포르 이슈를 거부하는 바람에 회의는 곧바로 결렬됐다.
싱가포르 이슈는 1996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차 WTO 각료회의에서 제기된 내용으로 ‘투명한 세계무역’을 추구한다.
크게 4가지로 △정부조달 투명성 △무역원활화 △경쟁정책 △투자 및 투자협상 등이다.
정부조달 투명성은 각국 정부가 국내외 업체에 동일한 기회를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무역원활화는 통관 절차 간소화가 핵심이다.
경쟁정책 분야는 담합 금지 등 공정거래 분야의 국제 규범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투자 부문은 다자간 투자협정, 양자간 자유무역협정(FTA) 등 국제 투자의 규칙을 담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싱가포르 이슈의 쟁점은 협상의 내용이 아니라 협상을 시작할지 여부였다.
한국 유럽연합(EU) 등은 4개 분야의 협상을 바로 시작하자고 주장했다. 저개발 국가들은싱가포르 이슈가 다국적 기업에만 유리하다며 반대했다.
EU가 정부조달투명성과 무역원활화 협상만 시작하고 나머지는 미루자는 절충안을 내놓았으나 ACP 국가들은 거부했다.
칸쿤(멕시코)=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칸쿤 WTO협상 관련 주요용어▼
▽저율관세 의무수입물량(TRQ)=각국이 높은 관세로 보호하는 품목에 대해 교역 상대국이 최소한 수출을 할 수 있도록 수입 의무가 부과된 물량. 이때 관세는 우루과이라운드(UR) 기준이 정한 낮은 수준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는 관세를 기준 이하로 내리지 않으면 TRQ 증량을 통해 시장개방을 확대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관세 상한=민감한 품목이어서 각국이 국내 시장 보호를 위해 관세를 일정 수준 이하로 내리지 않더라도 최소한 넘지 않아야 할 관세 수준. 대체로 100% 선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100%를 넘는 농산물이 142개에 달해 관세 상한 설정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스위스 공식=관세를 내리는 방식으로 기존 관세가 높은 품목일수록 큰 폭으로 관세를 내리는 방안. 우루과이라운드(UR) 방식이 점진적인 인하를 규정하는 반면 스위스 공식은 비교적 큰 폭의 관세 인하를 불러온다. 한국은 중요하지 않은 품목의 관세를 크게 내리고 중요 품목 관세는 유지해 WTO가 요구하는 평균 관세 인하 수준을 맞춰 왔다. 이 때문에 스위스 공식은 한국에 매우 불리하다.
▽비교역적 관심(NTC)=사고파는 대상으로서 농산물의 성격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농업이 갖고 있는 환경, 사회, 문화적 기능을 뜻한다. 농업을 교역 대상인 상품만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국 일본 등 6개국이 NTC그룹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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