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은 ‘약자’인가. 그렇다. 우선 그를 밀어줄 확고한 정치세력이 없다. 명색이나마 유지됐던 집권여당조차 사라졌다. 신당이 생긴다지만 그쪽에서도 ‘노무현당’은 꺼린다. “노무현당이 되는 순간 통합신당이 망한다는 것은 누구든지 안다”(김근태 통합신당 원내대표)는 것이다.
민주당과는 이미 남남이다. 대선후보 때부터 흔들어댔던 비주류측이 신당을 지지한 노 대통령에 대해 “조강지처 버리고 새장가 가는 격”(박상천 최고위원)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아무래도 우습지만, 노 후보를 밀었던 측 또한 “당내 통합도 못하면서 어떻게 국민통합을 할 수 있느냐”(추미애 의원)며 야유하고 있으니 어차피 이혼서류에 도장 찍을 일만 남은 셈이다.
▼‘비주류의 강박관념’ ▼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야당이야 으레 그러려니 하더라도 “박정희와 대처의 리더십이 아쉽다”는 재계는 물론 원군이었던 노동계마저 “선무당 노무현이 노동자 잡네”라는 식의 막말까지 해대고 있으니 어느 한 곳 정붙일 데가 마땅치 않다. 비판 언론은 ‘5년간 꿋꿋하게 맞서야 할 상대’이고 정작 힘이 되어야 할 국민의 지지도도 크게 떨어졌다. 이래저래 노 대통령은 ‘약자’다.
귀국 논란을 빚은 송두율 교수의 스승인 독일의 세계적 석학(碩學) 위르겐 하버마스는 “후기 자본주의하에서 현대 정치는 테크니컬(technical)한 것 외에 없다고 본다. 보수 또는 진보의 가치 추구보다는 현실의 주어진 조건하에서 테크니컬하게 관리하는 것밖에 없지 않은가”라고 갈파했다.
하버마스는 경제시스템이 세계화에 편입 또는 종속된 후기 자본주의에서 개별국가의 정치권력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예컨대 뉴욕증시 붕괴가 서울증시에 미치는 영향을 한국 정부의 힘만으로 막을 수는 없다. 따라서 정치권력은 ‘동북아 경제중심’ 같은 담론을 생산하거나 내부의 기술적 관리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물론 현대 정치의 역할을 냉소적으로 바라본 것이겠지만 스스로 ‘약자’라고 생각하는 노 대통령으로서는 오히려 그의 말에서 국정운영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테크니컬한 관리’로 국민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하는 것이다. 더도 말고 행정수반의 역할에 충실하라는 얘기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비주류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늘의 비주류를 서둘러 내일의 주류로 만들어야 한다는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 설령 그러한 관점이 개혁과 변화를 위해 양보할 수 없는 정치적 신념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의 속살을 벌겋게 드러내서는 곤란하다. 그러려면 혁명가나 운동가가 됐어야 한다.
국정 최고지도자라면 정치적 신념을 추구하더라도 현실적 전략적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누울 자리 보고 발 뻗으라고, 이를테면 경제는 갈수록 나빠지고 청년 백수가 거리를 헤매고 있는 판에 ‘비주류의 헤게모니’에 집착한대서야 어느 국민이 박수를 치겠는가. ‘약자’라고 여기는 노 대통령에게 더 이상 설득하고 포용하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다만 갈등과 분열을 확대 재생산하는 일만은 피하기 바란다.
▼ ‘진정한 강자’ 되려면 ▼
노 대통령은 정말 ‘약자’인가. 아니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을 ‘약자’라고 생각할 국민은 없다. 그런 대통령이 스스로 ‘약자’라고 한다면 그 속내야 어떻든 리더십에 대한 신뢰도와 국정의 안정감이 약화될 수 있다. 더구나 ‘왜곡된 약자의식’은 ‘오만한 강자의식’ 못지않게 나쁘다. 그것이 쌓일수록 지지기반은 더욱 좁혀질 수 있다. 그러면 정말 ‘약자’가 된다.
노 대통령에게 다시 설득과 포용의 큰 정치를 당부한다. 우리 국민은 아직 ‘테크니컬한 관리’나 하는 대통령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분단국가인 우리의 형편은 여느 후기 자본주의 국가와는 다르다. 큰 정치로 국민의 지지를 넓혀 가는 대통령이 ‘진정한 강자’다.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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