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92년 10월6일 북한의 적화통일전략에 동조, 남한에 노동당지부를 결성하고 각계각층의 인물을 포섭해 지하활동을 벌여온 대규모 간첩단이 적발됐다.
국가안전기획부는 6일 북한에서 밀파된 거물급 간첩들의 지휘를 받아 오는95년 적화통일을 목표로 암약해온 「남한 조선노동당」 가담자 95명을 적발, 이중 조선노동당 중부지역 당총책 황인오씨(36) 등 62명을 국가보안법위반(간첩 및 반국가단체구성·가입) 혐의로 구속하고 손영희씨(30·여) 등 2명을 불구속 입건,달아난 3백여명을 추적중이라고발표했다.
구속자 62명 가운데는 이미 구속사실이 보도된 전민중공동대표 김낙중씨(57) 전민중당정책위원장 장기표씨(47) 등 8명이 포함돼 있다. 안기부는 이들로부터 무성권총 3정 실탄 88발 무전기 4대 독약앰풀 6개 난수표 6조 등 공작장비 1백21종 1천5백54점을 증거물로 압수했다고 밝혔다.
안기부에 따르면황씨는 북한권력서열 22위인 대남공작총책 이선실(여·70세 가량)에게포섭돼 지난 90년 10월17일 이를 따라 밀입북,로동당에 가입하고간첩교육을 받은뒤 공작금 일화 5백만엔과 권총 1정 실탄 30발 무전기 난수표 북한로동당 강령 규약 등을 갖고 같은달 23일 돌아온 혐의를 받고 있다.
황씨는 그뒤 동생 인욱씨(25·서울대대학원 서양사학과2년)와 평소 노동운동을 하며 알고지내던 전민중당 성남을지구당 노동위원장 최호경씨(35) 등 핵심 주사파 12명을 북한 로동당에 가입시키고 지난해 7월말경 최씨 등과 함께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을 결성하고 산하에 강원 충북 충남 3개도당을 결성했다는 것.
「남한조선노동당」사건 실상과 문제점
안기부가 6일 발표한 「남한조선노동당」사건은남로당사건 이후 최대규모의 간첩사건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 북한 권력서열 22위로 대남공작 총책인 이선실(여·70세가량)이 장기간국내에 체류하며 「남한조선 노동당」 결성에 직접 관여했고 북한의 장관급 고위공작원들이 수시로 국내에 잠입,이 사건 관련자들과 접촉했다는점에서 가히 충격적이라 할만 하다.
그러나 그토록 많은 간첩들이우리사회에서 오랫동안 암약해온 사실을 안기부 등 대공수사기관이 지난8월 김낙중씨를 연행하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는 점에서 우리의 대공수사망에 중대한 허점이 있음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실상
안기부가 발표한 간첩단은 크게 △김낙중계열 △황인오계열 △손병선계열 등 세부류로 구분된다.
이중 김낙중씨 사건은 안기부가 지난달 이미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바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핵심인물은 지하조직인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총책인 황씨와 황씨와는 별도로 민중당 등합법 정당활동을 가장해 활동해온 손씨라 할 수 있다.
황씨는 지난80년 4월 사북탄광 소요사건을 주동,수배를 받고 도피중 같은해 6월미스유니버스선발대회장을 폭파하려다 검거돼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으나82년 12월 형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황씨는 이 때문에 사북사태를 민중봉기로 높이 평가하는 북한의 눈에 들게된데다 동생 인욱씨(25)도 87년 1월 북한방송 청취내용을 서울대에 대자보로 부착한 혐의로징역 3년을 선고받는 등 이른바 「성분」이 좋아 북한측의 포섭대상이됐다는 것.
황씨는 이에 따라 90년 10월17일 밤 이선실 등과함께 강화도 양도면 해안에서 북한의 반잠수정을 타고 북한 해주에 도착했으며 평양에서 로동당에 입당하고 간첩교육을 받은뒤 같은달 23일같은 루트를 통해 귀환한 것으로 밝혀졌다.
황씨는 당시 북한으로부터남한에 돌아가 강원 충남 충북 등 3개 도를 관할하는 노동당 중부지역당을 결성하고 김정일이 축지법으로 남한에 다녀갔다는 유언비어를 유포시켜 민심을 교란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황씨는 이 지시대로 지난해7월29일 강원도 호산해수욕장의 한 여관에서 최호경(35) 은재형(28) 정경수씨(27) 등 다른 구속자 3명과 함께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중앙위원회를 결성했다.
황씨 등은 이때 북한 로동당의 규약에 입각,「주체사상을 유일한 지도이념으로 한다」는 내용의 규약과 김일성에충성을 다짐하는 맹세문을 채택했다고 안기부는 밝혔다.
이들은 그뒤서울의 호텔방 등을 빌려 김일성초상화와 자신들이 만든 로동당기 등을벽에 걸고 조직원들의 입당식을 비밀리에 거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또 강원도당 산하의 애국동맹(95년 위원회의 후신)에 「8·28학생동맹) 「5·1노동동맹」「11·11농민동맹」 등의 기구를 만들어각계로의 침투를 기도했다는 것.
▲문제점
이 사건이 던진 가장큰 충격의 하나는 우리의 대공수사망에 엄청난 허점이 있다는 점이라 할수 있다.
정부는 그동안 남북대화를 계속하면서도 일관되게 반공정책을 고수해 왔는데 안기부 등 전문 대공수사기관이 이같은 대형간첩단의암약상을 눈치조차 채지못하고 있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선실 등 북한 고위급 공작원들이 강화도와 제주도의 해안을 통해 자유자재로 남한을 드나들었고 검문소에서는 이들을 검문하고도의심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대공경계 태세에도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것이다.
안기부는 이를 우리사회의 대공경각심이 해이해진 탓으로 돌리고 있으나 국방 및 대공수사 관계자들의 책임을 추궁하고 대비책을 긴급히 강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이 사건이 대선을 앞둔 미묘한 시점에서 표면화 된 것과 관련,단순한 우연이라는 안기부의 주장과는 달리 수사발표 시기가 계산된 것이라는 추측도 나도는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북한 공작원들이 수시로 남한에 잠입,암약했다고 발표했지만막상 남파간첩은 1명도 검거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같은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
안기부는 또 수사과정에서의 고충을 이유로 구속된 피의자들과 변호인의 접견을 막아 수사절차상 불법을 저질렀다는 비판을 받기도했다.
물론 김낙중씨 등 구속자들이 간첩혐의 사실을 시인하고 있기때문에 이 사건은 「조작」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대미문의이런 엄청난 간첩사건이 이제와서 터진 것은 파문만큼이나 많은 문제점과 여러 의문을 우리사회에 던질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당 간첩단사건/정치권도 수사대상/안기부차장 상위답변
국회국방위는 12일 이현우 신임안기부장을 출석시킨 가운데 「남한 조선노동당」간첩단사건 수사결과 및 앞으로의 수사방향 등에 대해 보고받고정책질의를 벌였다.
이날 성용욱 안기부 제1차장은 이번 간첩단사건에 정치인이 관련돼있는지 여부에 대한 질의를 받고 『현재로서는 연루자가 없다』고 밝힌 뒤 『그러나 아직 수사해야할 대상이 남아 있으므로단언하기는 곤란하다』고 답변했다.
성 차장은 이어 『이에 관해 많은첩보와 단서를 갖고 있으나 어떻게 확대될지는 수사를 더 진행해봐야알 수 있다』면서 『이번 간첩사건은 몇달이나 몇년이 걸리더라도 철저히수사하겠다』고 답변,정치권으로의 수사확대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김대중민주당대표의 전 비서 이근희씨의 국방위 기밀문서 유출사건과 관련,『법적인 책임은 이씨 한사람으로 국한되며 김 대표에게는 형사적 책임이 없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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