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90>卷三. 覇王의 길

  • 입력 2003년 10월 2일 17시 36분


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宋義를 베고 솥과 시루를 깨다(2)

피 흐르는 칼을 씻어 칼집에 꽂은 항우는 벌벌 떨고 있는 군막 안의 사졸들에게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말했다.

“송의가 제(齊)나라와 짜고 초나라에 반역하려고 드니, 대왕께서 가만히 사람을 보내 이 적(籍)에게 그를 죽이라 명하셨다. 너희들은 두려워하지 말고 어서 나가 장수들이나 모두 이 군막으로 불러 모으라.”

그리고 오래잖아 장수들이 모여들자 항우는 송의의 머리를 번쩍 들어 모두에게 보이며 한 번 더 큰소리로 외쳤다.

“송의가 제나라와 짜고 우리 초나라에 모반하려고 들었소. 대왕께서 가만히 명을 내려 그를 목 베라 하시기에 이 아침 그 명을 받들었소이다.”

그러자 진작부터 항우의 심복이 되어있던 장수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은근히 송의 쪽으로 기울어 있던 장수들까지도 두려움에 차 그 말을 받아들이고 감히 항우와 맞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처음 초나라를 세우신 것은 장군의 집안이었습니다. 이제 장군께서 다시 난신(亂臣)을 죽여 나라를 바로잡으셨으니 또한 초나라 백성들의 크나큰 복입니다.”

장수들은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하며 항우를 세워 임시로 상장군을 대신[가상장군]하게 하였다. 뿐만이 아니었다. 장수들은 또 사람을 시켜 송의의 아들 송양(宋襄)을 뒤쫓게 하니, 그 명을 받은 자들은 제나라까지 따라가서 그를 죽였다. 그런 다음 환초(桓楚)를 팽성으로 보내 회왕에게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알리게 하였다.

환초로부터 송의 부자(父子)가 죽은 것과 그 뒤에 장수들이 모여 저희끼리 항우를 상장군으로 받든 일을 전해들은 회왕은 몹시 놀랐다. 송의와 옛 초나라 공족(公族) 부스러기들의 부추김 때문에 빠져들었던 단꿈에서 소스라쳐 깨어나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았다. 항량과 범증이 양치기인 자신을 처음 찾아왔을 때를 떠올리다가, 다시 무엇에 홀린 듯 보낸 지난 몇 달을 돌이켜보며 후회와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그렇게 되자 뒷일은 항우가 바란 대로 풀려갔다. 회왕은 항우에게 자신이 세운 상장군을 함부로 죽인 죄를 묻기는커녕 오히려 상장군의 패인(牌印)과 상을 내려 반적(叛賊)을 주살한 공을 치하했다. 또 송의의 뒤를 받쳐주기 위해 당양군(當陽君) 경포(경布)와 포장군(蒲將軍)을 비롯한 별장(別將)들을 모두 불러들였는데, 때마침 그들이 팽성에 이르자 회왕은 그들도 모두 항우에게 보내 그 밑에서 싸우게 했다.

항우가 경자관군(卿子冠軍) 송의를 죽인 뒤로 그의 위엄은 온 초나라를 진동시키고, 명성은 다른 제후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그 때문인지 옛 제나라 왕 전건(田建)의 손자 안(安)이 제북(齊北)에서 적잖은 군사를 이끌고 와 항우 밑에서 싸우기를 원했다. 거기다가 패공 유방을 빼고는 별장들도 모두 항우 밑에 모인 셈이라 이제는 군세(軍勢)도 항량이 살아있을 때에 못지않았다. 그때 다시 조나라에서 사자가 달려와 위급을 알렸다.

“거록성(鉅鹿城) 북쪽에 진치고 있던 진여(陳餘)의 군사들 가운데 5000명이 거록성을 구하러 왔다가 진군(秦軍)에게 몰살당하고 말았습니다. 또 연(燕)나라와 제(齊)나라, 대(代)땅의 군사들이 저마다 구원을 와 있으나 한결같이 누벽(壘壁)을 높이 쌓고 틀어박혀 있을 뿐, 감히 진군과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초나라의 강병(强兵)이 아니고는 아무도 우리 조나라의 위태로움을 구해줄 수 없을 듯합니다.”

그러면서 그 경위를 자세히 털어놓았다.

그때 거록성을 에워싸고 있던 것은 장함의 부장(副將) 왕리(王離)가 이끄는 10만 군사였다. 장함은 따로 5만 군사를 이끌고 극원(棘原)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거록성 밖 왕리의 진채에서 하수(河水)까지 양쪽에 흙담을 쌓아올린 길[甬道]을 만들게 했다. 하수 물길로 실어온 군량을 왕리에게 안전하게 대주기 위함이었다.

오래잖아 그 흙담길이 다 만들어지자 왕리의 군사들에게는 군량이 넉넉해졌고, 그 때문에 한층 맹렬히 거록성을 공격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 안은 군사가 많지 않은데다 군량까지 떨어져 형편이 말이 아니었다. 이에 조나라 승상 장이(張耳)는 여러 차례 사람을 성밖으로 내보내 거록성 북쪽에 진치고 있는 대장군 진여에게 속히 군사를 내라고 재촉했다.

그러나 진여가 거느린 3만은 왕리의 10만 대군에 비해 터무니없이 머릿수가 적고 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함부로 움직이지 못해 몇 달이나 머뭇거리며 군사를 내지 않자 성안에서 고초를 당하던 장이는 몹시 성이 났다. 거느리던 장수 장염(張(암,염))과 진택(陳澤)을 다시 성 밖으로 내보내 진여를 찾아보게 하고 크게 꾸짖었다.

“일찍이 공과 나는 서로를 위해 목을 잃어도 아깝지 않을 교분[刎頸之交]를 맺은 바 있소. 거기다가 지금 나는 우리 대왕과 더불어 성안에 에워싸여 아침저녁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소이다. 그런데도 그대는 수만의 병사를 끼고 앉아 우리를 구해주지 않으니, 어디에 서로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의리가 있다는 말이오? 그대가 신의를 지키고자 한다면 어찌 진나라 군사와 싸워 함께 죽기를 마다하는 것이오? 만약 그대들이 죽기로 싸운다면 그래도 열에 한둘은 살아남아 신의를 다할 수 있을 것이며, 죽은 이도 오래 잊혀지지 않을 아름다운 이름을 얻을 것이외다.”

그러자 진여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장공(張公)께서는 너무도 이곳의 실정을 모르십니다. 지금은 내가 거느린 군사를 모두 내던져 밀고 나간다 해도, 조나라는 구하지 못하고 군사만 잃게 되고 말 것입니다. 또 내가 그렇게 하여 군사들과 함께 죽지 못하는 까닭은 살아남아 조왕(趙王)과 장공의 원수를 갚아주기 위함입니다. 지금 진나라 군사에게 덤비는 것은 굶주린 범에게 고기를 던지는 것과 같으니, 무슨 이로움이 있겠습니까?”

이번에는 장염과 진택이 진여를 몰아댔다.

“하지만 성안의 일은 급박하기 짝이 없습니다. 대왕과 승상 모두 이대로 가면 며칠을 버텨낼 수 있을지 실로 걱정입니다. 그런데 대장군께서는 어찌 죽음으로 신의를 세울 생각은 않으시고, 가만히 앉아 뒷일만 헤아리고 계신단 말입니까?”

그들까지 그렇게 나오자 진여도 마음을 바꾸었다.

“그래야 아무 쓸모없을 것이라 보지만, 두 분께서도 그리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구려. 군사 5000을 나누어줄 터이니 두 분께서 이끌고 가서 한번 진군과 싸워보시오. 나도 형편을 보아 움직이도록 하겠소.”

그러면서 군사 5000명을 떼어주었다.

장염과 진택은 성안으로 신호를 보내기 바쁘게 5000 군사를 휘몰아 진군에게 부딪쳐 갔다. 하지만 장한 것은 기세뿐, 처음부터 어림없는 싸움이었다. 두껍게 성을 에워싸고 있던 진군이 되돌아서서 거세게 맞받아치니, 장염과 진택의 5000 군사는 화톳불에 눈발 녹듯 스러졌다. 성안의 군사들이 제대로 호응을 나오기도 전에 하나도 남김없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때 거록성 밖에는 연나라와 제나라의 구원병이 와 있고 장이의 아들 장오(張敖)도 대(代)땅에서 거둔 군사 1만여명을 이끌고 와 있었다. 그러나 진군이 워낙 대군인데다 기세까지 사나워 모두 누벽을 높이 쌓고 지키기만 할 뿐, 감히 싸울 마음을 먹지 못했다. 누가 와서 전기(轉機)를 마련해주지 않으면 가망 없다고 여긴 진여가 다시 초군(楚軍)에 사람을 보내 간절하게 구원을 빌었다. 항우를 찾아온 것은 바로 그 진여가 보낸 사자였다.

송의를 죽여 일찍이 항량이 가지고 있던 병권(兵權)을 되찾을 때까지 항우가 보여준 참을성과 헤아림에 못지않게 뒷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그만의 비상함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사물의 기미를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힘이었다. 항우는 넓게는 삶과 세상을 바닥으로부터 바꾸어 놓는 조짐이나 계기이고, 좁게는 싸움터에서의 이기고 짐을 가르는 전기(轉機)같은 것으로 나타나는 어떤 미묘한 기운을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느낄 줄 알았다.

그때도 그랬다. 항우는 진여나 조나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렵게 손에 넣은 힘과 권위를 확대하는 계기로서 거록이란 싸움터가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함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나는 계부(季父)가 목숨을 바쳐 쌓아올린 것들을 어렵게 되찾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란다. 그것들을 보다 굳건히 하고 키워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이 거록에서 장함을 쳐부수는 것이 그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된다. 장함을 이겨 초나라뿐만 아니라 천하의 항우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서둘러서는 안 된다. 나중에 그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잃게 되더라도 당장은 제후(諸侯)군의 절망과 낙담을 키워야 한다. 저들이 쌓인 패배의 무게를 더 견뎌내기 어려울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 싸움으로 그것을 덜어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보다 뚜렷하게 초나라의 항적(項籍)이 아닌 천하인(天下人)으로서의 항적을 저들에게 알릴 수가 있다.)

그렇게 본 항우는 먼저 별장(別將)으로 뒤늦게 그리로 온 당양군 경포와 포장군을 불렀다.

“당양군과 포장군은 군사 2만을 거느리고 먼저 조나라로 가서 거록을 구하시오. 적은 대군이니 힘으로 맞서 억지로 싸우지는 마시오. 또 반드시 이기려 하다가 군사를 잃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오. 다만 초나라도 구원을 왔다는 것만 밝히고, 군세를 보존한 채 기다리면 내가 대군을 이끌고 가서 장함과 자웅을 겨루겠소!”

항우가 그렇게 명을 내리자 경포와 포장군은 다음날로 군사를 몰아 북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병법에 밝다는 대장군 진여조차 진군(秦軍)의 기세에 눌려 제자리에서 모은 3만의 군사를 이끌고도 몇 달째 한곳에서 꼼짝달싹 못하고 있는 판이었다. 멀리서 와 지친 데다 지리에도 어두운 초군(楚軍) 2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다만 경포가 한번씩 날랜 군사를 내어 진군을 치고 빠짐으로써 초나라도 구원을 왔음을 제후들과 진군(秦軍)에게 겨우 알릴 뿐이었다.

그러자 답답해진 진여는 다시 항우에게 사람을 보냈다.

“장함을 쳐부수고 거록을 구하는 것은 한 제후국 조나라를 살리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무도한 진나라를 쳐 없애고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일은 이제 오직 장군께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제후들은 장군께서 대군을 이끌고 거록으로 오시어 모두를 이끌어 주시기만을 목을 빼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자는 항우에게 그렇게 진여의 말을 전했다. 항우는 그래도 열흘이나 더 시간을 끌다가 마침내 몸소 대군을 움직였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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