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박용옥/北核위협 이젠 무감각해졌나

  • 입력 2003년 10월 5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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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 핵정책이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고 핵개발 속도도 예상보다 훨씬 빠른 것 같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2일 “8000여개의 폐연료봉 재처리를 완료했고 이를 통해 얻은 플루토늄은 핵 억지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용도를 변경했다”고 밝혀 북한이 핵무기 생산에 착수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북한은 또 미국의 적대시정책에 대한 정당방위 수단으로 “핵억지력을 유지,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는 4월 중국 베이징(北京) 3자회담에서 북한 대표가 미국 대표에게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넌지시 건넨 말을 재확인하는 것 같다.

북한이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이후 94년 ‘제네바 핵합의’를 거쳐 2002년 10월 ‘고농축우라늄 개발계획’ 시인까지 10년이 걸렸으나 그 뒤 ‘재처리 완료’와 ‘핵무기 생산 착수’ 시인까지는 1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10년간의 ‘핵 모호성 유지’ 정책이 1년 사이에 ‘핵 기정사실화’ 정책으로 돌변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 미국 등 6자회담 참여국들은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다. 북한 핵에 무감각해진 것인지, 어떤 대책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속수무책인 것인지 혼란스러울 뿐이다.

우리를 더 불안케 하는 것은 앞으로 북핵 6자회담이 개최돼도 그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회담 참여국 모두가 북한의 핵 보유를 원치 않기는 하나 각각의 이해관계는 상충될 소지가 크다. 따라서 참여국들이 의지를 모아 대북한 협상을 체계적으로 촉진할 ‘다자 공동 로드맵’을 구상하기가 쉽지 않다.

둘째, 미국은 북한체제의 ‘안전보장방안’을 검토한다고 하나 ‘악의 축’의 일원인 북한체제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모순을 안고 있고, 중국 러시아는 북한의 처지를 감안해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고 있으며, 일본은 핵문제보다 미사일과 일본인 납치 문제에 더 예민한 편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최근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구를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보장과 연계하려는 매우 복잡한 태도마저 보이고 있다.

셋째, 미국은 상당기간 이라크 전후처리에 전념해야 해 북핵 문제에 다시 강압적 조치를 취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북한의 요구를 수용할 수도 없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넷째, 기존의 외교적 해결 노력은 북한 핵개발 상황을 가시화했을 뿐 그 해결 전망은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북한의 ‘핵 보유 공식선언’도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자세로 대처해야 하나? 북한의 핵 보유 의도가 분명해진 이상 문제의 본질은 의지와 시간의 싸움이지 단순히 절차상의 타협이 아님을 6자회담 참여국들이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또 지난 1년간 북한의 핵 관련 언동은 단순히 ‘협상용 엄포’나 선전목적의 외교적 ‘허풍’이 아니라 행동이 뒤따랐음도 주목해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 생산 착수를 시사한 것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여기서 관건은 한미일 3국이 한 목소리로 중국 러시아를 설득해 회담 참여국 모두가 북한의 핵 포기를 강력 촉구하며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다자 공동 로드맵’에 합의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특히 한미간의 긴밀한 공조 여부가 6자회담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박용옥 한림대 교수·전 국방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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