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심의가 보류된 데 대한 조영동(趙永東) 국정홍보처장의 브리핑 내용이 부실했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 국무회의 직후 가진 브리핑에서 조 처장은 “일부 국무위원의 국회 대정부 질문 참석과 다른 법안 심의 때문에 시간이 없어 다음 주로 미루기로 했다”며 “토론은 없었다”고 밝혔다.
다음은 브리핑 중 기자들과 가진 일문일답 내용.
―총리 말고 어느 국무위원이 어떤 발언을 했나. “여성부 장관은 차관회의를 통과했으니까 심의하면 좋겠다고 했다.”
―총리와 여성부 장관 외에는 말하신 분이 없었나. “없었다.”
기자들은 자녀가 어머니의 성(姓)과 본(本)을 따를 수 있게 한 민법 개정안에 대한 뜨거운 사회적 관심을 감안해 심의가 보류된 이유에 대해 20여분 동안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하지만 조 처장은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무려 14번이나 되풀이했다.
시간이 없어 심의를 미뤘다는 조 처장의 말은 맞다. 그러나 총리와 여성부 장관 외에 발언한 사람이 없었다는 대답은 몇 시간 만에 거짓말로 드러났다. 다른 국무회의 참석자에 의해 김진표 부총리, 성광원 법제처장,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민법에서 가족의 개념이 사라지는 문제를 놓고 논란을 벌인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결국 기자들은 부리나케 기사를 고쳐야만 했다.
국가의 주요 정책이 결정되는 국무회의 내용을 ‘다듬어’ 언론에 공개해야 하는 조 처장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런 입장이더라도 “일부 논의는 있었지만 공개하기 힘들다”고 말했어야 정도가 아닐까.
그는 23일 기자에게 “김 부총리와 일부 장관이 개정안에 대해 한두 마디 우려를 표시한 것이지 토론을 한 게 아니다. 본질적 문제가 아니어서 밝히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조 처장이 실제로 그렇게 판단했다면 그 또한 문제라는 생각이다. 정부안을 최종 확정하는 국무위원들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는 법안의 이해당사자들에게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 처장은 개정안이 15일 국무회의에 상정될 예정이었으나 이날로 연기됐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음이 브리핑 과정에서 드러났다.
새 정부가 도입한 기자실 개방과 브리핑 제도는 정확하고 책임 있는 브리핑을 전제로 한 것이다. 부실한 브리핑이 되풀이되면 결국 정부의 신뢰가 무너질 뿐만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도 침해당할 수밖에 없다. 언론인 출신인 조 처장이 이 점을 모를 리가 없기에 더욱 안타깝다.
이종훈 정치부기자 laylor55@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