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57…잃어버린 계절(13)

  • 입력 2003년 11월 2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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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쉬지 않고 움직인다. 내일 아침에는 부산에 도착한다고 한다. 어쩌면 벌써 조선의 바다로 들어섰는지도 모른다. 배는 틀림없이 조선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어디로?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다롄에서 미군이 임시로 설치한 텐트에 수용되어, 머리를 짧게 깎고 이를 없앤다고 DDT를 잔뜩 뿌린 채 남녀 다른 방에서 귀국선을 기다렸다. 처음에는 80명 정도였는데 나날이 늘어나, 지금도 몇백명이 다음 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한눈에 위안부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여자도 있었지만, 눈이 마주쳐도 외면하고 말은 걸 엄두조차 안 났다. 나는 미군복을 입은 조선 사람에게, 조선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 만주에 남든지 일본에 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조선 사람은 반드시 조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해서, 별로 크지도 않은 어선에 100명도 더 되는 사람들과 함께 올라탔다.

그리고 배와 항구 사이에 바다가 가로놓이고, 나는 조선에 돌아가기가 겁났다. 낙원에서 멀어졌는데도 내 몸이 따라왔다. 더 이상 따라오지 말라고 몸만 걷어찰 수는 없다. 아, 그러나 과연 몸만 그럴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낙원에서 있었던 일은 지워지지 않는다…아무리 친절한 사람을 만나도…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을 수는 없다….

나미코는 갑판 제일 후미에 서서 난간을 꽉 잡았다. 사방이 온통 어둠…귀국선만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캄캄한 바다 위를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어둠은 피부 하얀 파도는 상처…어둠에서 순간적으로 생겨나, 다시 순간에 어둠으로 사라지는 하얀 강, 바다 속 강…선실에서 또 만세! 만세! 만세! 하고 환희의 외침소리가 일고, 애국가를 합창하는 소리가 울려나왔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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