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막 가자는 것이냐’며 젊은 검사들을 ‘꽉 잡았던’ 것도 지나고 보니 아주 잘했던 일이다. 그렇게 검사들의 자존심을 안 건드렸다면 검찰이 요즘처럼 할 수 있었을까. 덧붙여 ‘당차고 똘똘한’ 강금실씨를 법무부 장관에 앉힌 것도 그중 잘한 인사다. 검찰총장과 스스럼없이 팔짱을 끼고 우리는 좋은 사이라는 데야 이제 와서 알아서 해 주기를 기대하기란 난감한 일일 테니까.
▼‘장외투쟁’ 외쳤다고 하니 ▼
검찰의 처분만 바라는 꼴이 된 정치권의 퇴출 대상 인사들은(여야 가릴 것 없다) ‘노무현의 아마추어리즘’이 검찰의 간을 배 밖으로 나오게 했다고 내심 한탄할지 모르겠다. 그런 인사들은 이제 정말 한숨을 쉬더라도 감옥이나 집에 가서 쉬어야 한다.
일주일 전 만난 어느 한나라당 의원은 딱히 감옥이나 집에 가야 할 인물이 아닌 듯싶은 데도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가장 큰 문제는 최병렬 대표만 한 인물도 없다는 겁니다.”
최 대표에게 듣기 좋은 얘긴지, 아닌지는 그 사연을 들어보고 판단하자.
“노 대통령이 불쑥 재신임안을 내놓았을 때 당내 상당수 의견은 덜컥 받으면 안 된다. 받더라도 대통령의 속내가 뭔지 알아보고 하루 이틀 여론의 추이도 살피면서 신중히 하자는 것이었는데 중진급에서는 당장에 좋다, 국민투표하자고 밀어붙였습니다. 아마 노가 또 실수했다, 4년을 더 기다릴 것 없이 이참에 정권을 바꾸자는 생각이었겠지요. 그들은 최돈웅 사건이 터지자 국회를 보이콧하고 장외투쟁을 벌이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최 대표로서야 대(對)국민 사과와 특검 요구를 병행해 그들의 불만을 무마할 수밖에요.”
만일에 한나라당이 야당탄압을 앞세워 장외투쟁에 나섰다면 그보다 더한 코미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불상사를 막을 만한 인물도 최 대표밖에 없다는 얘기다. 듣고 보니 나오느니 한숨이다. 거대 야당에 ‘50대 기수론’조차 없다니.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제 얼굴에 침 뱉기 식’ 싸움도 한심하기로 치면 둘째가기 서러울 지경이다. 뭐라고 한들 한 아궁이에 불을 땐 이들이 누구 얼굴에 묻은 검댕이 더 크냐고 연일 손가락질을 해대는 꼴이니 저들끼리 하는 소리가 사람들 귀에 희다, 검다 들어올 턱이 없다. 그렇게 박이 터지게 싸워 내년 총선에서 상대를 이긴들 정작 큰 이문은 누가 남길지도 모르는 모양이다.
하기야 누가 이기든, 어느 쪽이 이문을 남기든 다 부질없는 짓이다. 국민은 이미 그 따위에는 신경을 껐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이번에야말로 더러운 돈 정치의 뿌리를 뽑아내라는 것이다. 야당 대표와 전 대통령후보가 사과하고 재계가 다시는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해 봐야 반응은 ‘아, 그러셔’다. 말만으로는 어림없다.
▼깨끗하다고 한 적 없다면 ▼
노 대통령의 재신임 승부수가 진정 정치개혁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 역시 말만으로는 지금의 빅뱅을 피해 갈 수 없다. ‘깨끗하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면 얼마나 더러웠는지(더러울 수밖에 없었는지)를 말하고 검증을 받아야 한다. 도술씨(전 대통령총무비서관)가 봉술씨(전 대통령 운전사 선봉술씨)에게 수억원을 주고 SK 외 다른 기업에도 손을 벌리고 말고의 차원이 아니다. 대통령 자신의 말처럼 정치개혁이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면 대선자금에서 당선축하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치권이 어떻게 하든 국민이 ‘이번만은’ 하고 기대하는 것은 검찰이다. 무슨 고백을 하고 사과를 한들, 뒤늦게 정치개혁을 한답시고 수선을 떨든 이번만은 검찰이 제 역할을 해내야 한다. 검찰이 바로 서야 정치도 바로 선다.
전진우 논설위원실장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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