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산책]조헌주/100만권 ‘헌책의 향기’에 취해…

  • 입력 2003년 11월 3일 20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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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대의 고서점가인 도쿄(東京) 간다(神田) 거리에서는 해마다 가을이면 ‘헌책 축제’가 벌어진다.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3일까지 6일간 열린 올해 축제는 44회. 부근에 대학이 많아 하나둘 생겨난 ‘헌책방’이 거리를 형성한 것이 100년도 넘는다고 한다.

일요일 오후 이곳을 찾았을 때 거리는 일본인뿐 아니라 관광객들로 가득 차 길을 헤쳐 나가기 힘들 정도였다. 책방마다 20∼30% 할인표가 걸려 있었다. 주변 도로에는 임시 판매대가 늘어서 있고 골목에는 타지에서 온 책방주인들이 수레 위에 가두 서점을 차려 놓았다. 이번 축제에 선보인 헌책이 100만권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문학 영화 법률 스포츠 역사 여행 아동 등 전문분야별 서점이 즐비한 가운데 흘러간 시절의 LP 음반이나 CD, 혹은 일본 전통 판화를 파는 상인들도 있었다. 50∼100년 전의 일간 신문 한 장을 비닐로 잘 포장해 200∼400엔(약 2000∼4000원)에 팔기도 했다.

서양 영화와 음악 책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70대 여성은 “손님이 해마다 줄어들지만 작년에 책을 산 손님을 올해 다시 만나 기쁘다”고 말했다.

책 더미를 뒤지는 한 청년에게 말을 걸자 대답이 돌아왔다.

“지하철에서 내린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가방이 무거워졌네요.”

경제학을 전공한다는 이 와세다(早稻田)대 대학원생은 절판된 옛날 책을 찾으러 왔다가 한 권에 100엔(약 1000원)에 살 수 있는 좋은 책이 많아 잔뜩 샀다고 했다.

“벌써 배낭이 꽉 찼는데, 또 살 거야?”, “그만 가자”며 말리던 친구 2명도 이내 가을 햇살 아래 풍기는 책의 향기 속으로 함께 빠져들었다.

세계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다는 일본인. 이날 거리 서점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책의 가치를 발견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헌책 축제장에 10대들의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영상에 홀려 ‘문자 이탈’이란 말이 생겨난 요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은 듯했다.

조헌주 도쿄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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