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60…잃어버린 계절(16)

  • 입력 2003년 11월 5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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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나미코는 비와 마주했다.

“아까부터 내리고 있었다.” 우철은 나미코의 옆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전혀 몰랐습니다.”

저고리 어깨에 손을 대자, 젖은 것은 아니지만 눅눅하게 물기가 배어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빗발이 가늘까? 거미줄보다 더 가늘다. 바다에 파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그저 하늘의 어둠에서 바다의 어둠으로 빨려 들어가는….

“얘기를….”

“뭐?”

“…얘기를 좀 해도 될까예?”

“…나라도 괜찮으면….”

“…기억에 생생해예, 2년 전 8월 30일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배꼬리에 일렁이는 하얀 파도에 눈길을 던졌다. 파도와 바람과 배의 엔진 소리 속에서 나미코의 신세타령이 시작되었다. 우철은 대꾸 한 마디 안 하고 귀만 기울일 뿐이었다.

“날은 맑고 더웠습니다. 친구 두 명하고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었어예. 보통학교에서 배운 아메아메 후레후레를 부르면서…두 분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는 우근씨를 좋아했어예. 아니 어쩌면 첫사랑이었는지도 모르지예. 친구들하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말을 걸기로 했어예. 친구들은 보고 나는 주먹이었습니다. 두 분은 매일 제방 위를 달렸지예, 몇 바퀴고 몇 바퀴고…방금 전에 눈앞을 지나갔는데, 20분 후면 또 지나가니까 엄청시리 빠른 기지예. 잠시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두 분의 모습이 다시 보였습니다. 미안하지만, 내 눈에는 우근씨 모습밖에 안 보였어예. 아주 중요한 순간 같은 기분이 들었어예, 우연이 아니라, 지금 말을 거는 게 무슨 운명처럼 느껴졌어예. 한껏 용기를 내서, ‘안녕하신교!’ 하고 인사를 했더니, 우근씨가 깜짝 놀라면서 뒤돌아봤습니다. 나는, 교실에서 선생님이 아는 학생, 하고 물을 때처럼 오른손을 번쩍 들고, ‘힘 내시소!’ 하고 외쳤습니다. 우근씨가 ‘고맙다!’고 하면서 얼굴을 돌리고 달려갔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어예. 친구들이 팔꿈치로 쿡쿡 찌르고 놀렸지예. 새빨갛게 달아오른 나는 웃지도 못하고 뭐라고 말을 할 수도 없었어예. 친구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안 들렸고예. 그냥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두근두근해서, 두 손으로 입을 꼭 누르고 있었습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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