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63…잃어버린 계절(19)

  • 입력 2003년 11월 9일 19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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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도 선이 보일 정도로 빗발이 굵어졌는데, 나미코도 우철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나무 간판에 먹으로, 낙원이라 써 있었어예. 문이 열리고 머리가 벗겨진 남자가 나왔지예. 나이를 묻기에, 열 셋이라고 했더니, 누가 물으면 열넷이라 하라고 그라데예. 그리고 나한테 나미코란 이름하고 2번 방이 배정됐습니다. 빨간 간편복, 유카다 두 벌, 허리띠, 속바지 두 장, 고무 장화도 받았고예. 좁은 복도 양 옆으로 조그만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이름이 쓰인 나무 팻말이 걸려 있었어예. 세쓰코, 후미코, 기누에, 마사코, 에미코, 시즈에…이제 짐작이 가겠지예…낙원은 위안소였던 기라예. 내가 끌려간 곳은 일본군 제3사단의 연대 기지였습니다….”

나미코의 목소리의 여운이 금방 사라지지 않고 잠시 어둠 속에 떠다녔다. 고막을 뒤흔드는 것이 아니라 한기처럼 피부에 스며 감각을 마비시키는 그 여운을 견디면서 두 사람은 출렁출렁 오르내리는 어둠에 눈과 귀를 기울였다.

갑자기 파도 소리와 엔진 소리가 되살아나고, 나미코가 입을 열었다.

“그 다음은 들으면 귀가 더러워질 얘기뿐이라….”

“너가 얘기하고 싶으면…내 들으마….”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한다고…무덤까지 가지고 갈 비밀이라고 생각했는데…하지만도…사실은…얘기하고 싶었어예…누구한테 다 털어놓고…되돌이킬 수 없을만큼 더럽고 상처 입은 몸이지만, 네 잘못이 아니라고, 어리석기는 했어도 요만큼도 잘못한 것은 없다고, 그런 말을 듣고 싶었어예…안 그러면…나…죽을 수도 살 수도….”

“얘기해라.”

“…”

“날 믿고.”

“…”

“…너한테 들은 얘기, 잊지는 않을 테지만…아무한테도 말은 안 할기다.”

“…”

“내는 믿는다. 너는 눈처럼 깨끗하고, 아기처럼 무구하다고…다 말해라….”

“…다….”

“다 들어줄게.”

“…아저씨를…믿겠습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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