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65…잃어버린 계절(21)

  • 입력 2003년 11월 11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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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한테 들은 얘기는 아무한테도 안 한다.”

“…창씨개명한 이름은 가네모코 에이코라예…낙원에서는 나미코라고 불렸고…조상님이 물려주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어준 본명은, 밝힐 수가 없습니더. 내 가슴에 꼭 간직할랍니더.”

우철은 손만 머리에 올려놓은 채 몸을 떼고, 비와 눈물에 젖어 있는 나미코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렇다면….”

“…밀양에는 안 갈 깁니더.”

“…곧 아침이다. 오전 중에는 부산에 도착할 기고. 선착장에서 수많은 동포들이 북하고 꽹과리 치면서 배를 맞고, 우리들을 환영해 줄 기다. 같이 밀양에 돌아가자.”

“…”

“마 일단은 한숨 자자. 자고 눈뜨면 부산이다. 배에서 내리면 항구 식당에서 밥을 먹고. 게장에 미나리나물에 북어에 미역국에, 몇 년 동안 못 먹었던 우리 음식을 실컷 먹고, 배가 부르면 바다를 보면서 얘기하자. 시간은 아직 많다. 그러니까네 얘기 좀 더 많이 하자.”

“…나는 해 뜨는 것 보고 자겠습니더.”

“괜찮겠나?”

“괜찮습니더.” 나미코는 웃는 얼굴을 보였다.

“그럼, 잘 자거레이.”

“예, 아저씨도 잘 주무시소.”

나미코는 갑판위로 걸어가는 우철의 등에 대고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더.”

뜨는 해는 보이지 않았다. 쏴아 쏴아 더 세차게 내리는 비에 휩싸인 채 태양은 사방을 회색으로 물들이고, 하늘과 바다의 경계에 하얀 선을 그었다. 나미코는 빗물 때문에 미끈미끈한 난간에서 손을 뗐다. 신세타령을 하고 나니 알겠다. 내 인생은 망가졌다. 내 인생은 이미 결정되었다. 내 인생은 끝났다. 나미코는 하늘로 얼굴을 들었다. 빗방울이 나미코의 얼굴을 때렸다. 나미코는 노래했다.

아메아메 후레 후레

가아상가

자노메데 오무카이

우레시이나

핏치핏치 찻푸찻푸

란란란

가케마쇼 가방오

가아상노

아토카라 유코유코

가네가 나루

핏치핏치 찻푸찻푸

란란란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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