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이우철이네 집은 지금도 옛날 거기 맞습니까?”
“이우철…아아, 마라톤 하는….” 어머니는 소맷자락으로 콧물을 닦았다.
“보통학교 같이 다닌 친굽니다.”
“…옛날이라면, 언제쯤인가예?”
“제가 만주로 떠난 것이 열일곱 살 때고, 올해 나이 서른넷입니다.”
“아아, 그래 옛날 같으면, 당연히 다를 낍니다. 지금은 영남루 근처에서 다방하고 냉면집 하고 있습니다.”
“냉면집? 고무신 가게는 그만뒀나 보네예. 우철이 아버님하고 어머님은 건강하십니까?”
“어데, 둘 다 죽었다.” 할배가 곰방대에 담뱃잎을 꼭꼭 쑤셔 담고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아이고, 그래 원통한 일이…우철이는 잘 있습니까? 벌써 결혼해서 자식도 있을 낀데.”
“마…그렇긴 한데…아아…직접 만나서 얘기하는 게 낫겠습니다.”
“아 이거 죄송합니다. 심중도 헤아리지 못하고 이것저것 물어봐서, 죄송합니다. 부모님보다 우철이가 보고 싶어서, 설레는 마음을 그만 참지 못하고….”
“…16년 만이니까네, 그럴 만도 하지예.”
“그럼…이만 가보겠습니다.”
우홍은 인사를 하고 걸어 나왔다. 발소리가 멀어지는데, 아무도 듣고 있지 않았다. 다섯 명 가족이 모두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 속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묘는 우째야 하것노.” 작은 할아버지가 빈 사발을 다리 사이에 내려놓았다.
“어쩔 수 없재.” 할배가 툭 말을 뱉고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운철아, 받아써라. 무송 윤 부 윤희주 모 김경이 휘윤세주지묘 단기 4265년 6월 2일 몰. 묘는 없어도 기일에는 제사를 지내야재…아이고 불쌍해서 어쩌나.” 작은 할아버지는 애처로운 마음으로 사발을 쓰다듬었다.
아버지는 문갑에서 한지와 필묵함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고, 벼루로 먹을 갈면서 웅얼거렸다.
“단기 4265년 6월 24일에 태어났으니, 향년 마흔 살이네….”
붓에 먹을 묻히는 순간, 김원봉 만세! 윤세주 만세! 길거리에서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울렸다. 누가 흔들어대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버지의 오른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먹과 눈물이 한지에 뚝뚝 떨어졌다.
글 유미리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