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 오후 한일전기 강원도 원주시 우산동에 있는 원주공장은 난방기 생산이 막바지였다. 예년 같으면 12월 중순까지 끌고 갈 난방기 생산을 10일 가량 앞당겨 12월 초에 끝내기로 했기 때문. 한일전기는 한일펌프로 유명한 바로 그 회사다.
약 8000평의 공장에서 400여명의 직원들이 50여 가지 모델의 소형 가전을 생산하고 있었다. 한 개의 생산라인을 예닐곱명이 맡는 ‘셀(Cell)’ 생산 방식이어서 컨베이어벨트 방식의 생산공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분주해 보였다.
김길웅(金吉雄) 사장은 “예년 같으면 11월에 추가생산 하느라 한창 바쁠 때인데 올해는 추가생산을 전혀 못하고 생산을 마감케 됐다”고 말했다. 생산라인은 곧 선풍기로 교체될 예정.
이 회사가 생산하는 난방기기는 선풍기 모양의 원적외선 히터와 형광등처럼 생긴 발열기가 들어간 전기난로(스토브),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전기온풍기 등 크게 3가지.
서민들은 따뜻한 11월 날씨가 고마울 수 있겠지만 겨울용품을 생산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11월이 따뜻하면 타격이 크다. 12월만 돼도 사람들이 겨울용품을 잘 구입하지 않기 때문. 올해 11월은 서울 평균기온은 9.5도로 30년 평균기온 6.9도에 비해 2.6도나 높았다.
이 회사는 올 여름에도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선풍기 판매에 애를 먹었다. 이처럼 계절상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날씨 영향을 많이 받는다. 마케팅을 담당하는 임용철 상무는 “경기침체와 따뜻한 날씨가 겹쳐 업계 전체적으로 판매량이 30% 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64년 설립된 이 회사는 건실한 운영으로 채무가 전혀 없을 정도로 자금사정이 넉넉해 ‘따뜻한 11월’로 인한 심각한 걱정은 없다.
추위가 시작되는 12월에 선풍기 생산을 시작하고 한창 더운 8월부터 난방기를 만드는 이 회사는 날씨 같은 외부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셀 생산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생산품목의 변환이 쉽기 때문. 또 가습기 믹서 환풍기 탈수기 등 각 생산 라인별로 순환근무를 강조하고 있었다.
셀 생산과 순환근무 등 두 가지 생산방식은 인력배치를 용이하게 해 사람을 내쫓지 않아도 되도록 해준다는 설명이다. 이 회사는 외환위기 때도 직원을 단 1명도 내쫓지 않았다고 한다. 김 사장은 “날씨든 경기 침체든 외부환경 변화에 영향을 덜 받기 위해 노력을 더 하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회사방침이 적힌 사무실 벽 액자를 가리키며 “‘생산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 봉사한다’는 회사철학은 창업주의 확고한 생각이기 때문에 저임금을 찾아 공장을 중국으로 옮기는 일은 생각도 안 한다”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구슬땀을 흘리는 중소·중견기업의 노력도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주=허진석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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