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돌아오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아버님께서 살아계셨다면 지금의 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셨을지 계속 고민했습니다.”
그는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 정권 때도 귀국을 생각했지만 여러 가지 압력 때문에 뜻을 펴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새 정권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일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호권씨는 1975년 장 선생이 의문사한 뒤 자신도 역시 테러를 당해 3개월간 병원에 입원하는 등 신변의 위협이 계속되자 79년 말레이시아로 떠났다.
이후 박정희(朴正熙) 정권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82년 재입국했으나 얼마 후 기관원에게 끌려가 민주화운동 세력의 명단을 댈 것을 요구받고 고문을 당했다. 결국 그는 다시 싱가포르로 향했다.
그는 “아버님이 제가(齊家)보다 나라의 평안에 더 관심을 기울인 분이라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려웠다”며 “싱가포르에서는 공사장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갔지만 아버님의 함자에 부끄럽지 않게 살고자 노력했다”고 회고했다.
호권씨는 앞으로 ‘사상계’ 복간, 청소년 중국 탐방단 후원 등 장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한 각종 기념사업에 힘쓸 계획이다. 그는 “아버님의 유작 ’돌베개‘ 후편 완간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준하 선생과 같은 지도자가 한 분이라도 생존해 계셨다면 혼란한 사회에 얼마나 도움이 됐겠느냐”며 “정신적 사회적 지도자의 부재가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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