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2일부터 일선 공무원과 군인들을 보내 감염이 우려되는 닭과 오리를 도살했지만 인력 부족으로 신속한 처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조류독감이 독성이 강하고 인체 감염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공무원이나 군인들이 방역 작업에 동원되는 것을 기피했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공무원이나 군인들의 ‘태업(怠業)’이 조류독감 확산을 초래했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조류독감 확산과 관련해 이들만 비판할 수 있을까. 초기 방역 과정에서 고위공직자들은 과연 어떤 행태를 보였을까.
조류독감이 처음 확인된 날은 12일. 하지만 주무 장관인 허상만(許祥萬) 농림부 장관은 나흘이나 지난 16일에야 첫 발생지역인 음성을 찾았다. 허 장관은 나중에 닭고기와 오리고기 시식회를 갖는 등 나름대로 노력은 했다지만 초기 대응은 미흡했다.
‘책임총리’를 자처하는 고건(高建) 총리도 최초 발생일로부터 열흘이 지난 22일에야 농림부로 와서 방역 당국자들을 격려하고 충남 천안시를 방문했다. 다른 장관들도 조류독감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남의 일’인 양 손을 놓고 있었다.
‘하이라이트’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노 대통령은 이번 사태가 발생한 이후 공개석상에서 조류독감에 대해 거의 언급한 바가 없다. 현장 방문은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대신 조류독감이 최초로 발생한 음성에서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인 19일에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노사모’ 모임에 참석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올 4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진화를 위해 동분서주했던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를 떠올린다.
당시 원 총리는 베이징(北京)의 사스 감염자 수가 기존 발표보다 거의 10배나 많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직접 현장 확인에 나섰다. 베이징 시내 61개 유치원, 101개 중고교, 베이징대 부속 초등학교, 베이징 항공항천대, 베이징대, 제2외국어대 등 학교를 순회하면서 학생들로부터 현지 상황을 직접 들었다. 특히 참모들이 사스 감염을 우려하자 “내가 겁내면서 인민들을 어떻게 안심시킬 수 있느냐”며 호통을 쳤다.
노 대통령은 민생을 중시하는 ‘서민 대통령’의 구호를 내걸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조류독감처럼 중요한 민생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다.
송진흡 경제부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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