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 2003년을 달군 화두다. 얼굴이 예쁜 ‘얼짱’, 몸매가 빼어난 ‘몸짱’, 글발이 뛰어난 ‘글짱’에 이어 이젠 ‘그림짱’이 뜨고 있다.
문화관광부는 최근 ‘2003년 대한민국 만화·애니메이션·캐릭터 대상’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예상된 사실이지만’ 결과는 놀라웠다. 정철연씨의 ‘마린 블루스’(www.marineblues.net)가 대상을 차지한 것. 지난해 만화계에서 단연 돋보인 작품이라는 점이 수상 가능성을 예측케 했다면, 결과가 놀라웠던 것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만화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성공했기 때문이다. 기존 만화들은 만화잡지를 통해 등장해 단행본인 코믹스를 거쳐 캐릭터화되고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등으로 외연을 넓히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성게군’을 비롯한 해산물을 패러디한 마린 블루스의 캐릭터들은 인터넷에서 태어났다. 출판 대신 네티즌으로부터 직접 선택을 받은 것이다. 대상 수상에도 네티즌들의 힘이 크게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온라인 투표방식으로 진행된 인기상의 경우엔 15일간 15만명의 네티즌이 투표에 참여해 마린 블루스를 밀어줬다. 마린 블루스는 인터넷 팬 카페가 수백개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높다. 기존 만화산업의 관행과는 다르게 마린 블루스는 인터넷에서 성공한 뒤 캐릭터시장과 출판시장으로 진출했다. 지난해 10월에 제작된 다이어리는 예약 판매 개시 1시간 만에 1만권이 팔리는 성과를 거뒀으며, 2권까지 발매된 단행본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 ‘마린 블루스’ 2003 만화대상 수상
마린 블루스가 일으킨 ‘사건’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만화시장이 빠르게 변화한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선 만화가들은 인터넷을 통해 만화를 유통시킴으로써 자기들 입맛대로 스토리 전개에 입김을 행사하는 출판사들의 횡포(?)를 피할 수 있었다. 심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은 덤. 또한 인터넷은 등단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만화가 지망생들에게 손쉬운 ‘자력 등단’의 기회를 제공했다. 최근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느는 ‘블로그’(1인 웹미디어)가 자작 캐릭터를 뽐내는 예비 작가들로 붐비는 일도 이 때문이다. 반면 손쉽게 만화를 접하게 된 소비자들은 다른 독자들과 온라인을 통해 토론을 벌이면서 상호작용에 나서는 새로운 문화 소비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인터넷으로 출발한 만화 캐릭터는 적지 않다. 386세대의 추억을 감칠맛 나게 표현한 만화로 네티즌의 폭발적 사랑을 받은 강도영씨의 ‘강풀닷컴’(www.kangfull.com), 풍부한 감수성으로 인터넷을 통해 출판계 진출에 성공한 심승현씨의 ‘파페포포 메모리즈’(www.papepopo.co.kr) 등을 꼽을 수 있다. 또 독특한 캐릭터와 유머러스한 이야기 진행으로 인터넷에서 인기를 모은 고리타넷(www.gorita.net), 캐릭터 상품으로도 성공한 감자도리(www. gamzadori.com), 스노캣(www. snowcat.co.kr) 등도 기성 만화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렇듯 인터넷으로 성공한 캐릭터들은 기존 캐릭터 상품 시장에 연착륙하고 있다. 이미 광범위한 문화 소비자인 네티즌들에 의해 검증됐기 때문이다. 상품성만큼은 컨설팅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아마추어 만화가들이 인터넷을 주요 등단 매체로 여기고 개인 사이트를 구축하는 데 열을 올리는 것도 이 같은 성공을 지켜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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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로운 제작 풍토가 가장 큰 장점
인터넷 만화의 특징은 ‘엽기’ ‘단순’ ‘기발’, 이 세 단어로 요약된다. 오프라인 만화들이 여러 권에서 심지어 수십권까지 스토리가 이어지는 반면, 인터넷 만화는 하루에 한 편 혹은 격일에 한 편씩 연재하는 등 연재 주기가 자유로운 데다 종이규격에 맞출 필요가 없어 마음대로 컷을 구성할 수 있다. 여기에 내용 자체도 상업 출판물이 아니기 때문에 심의를 받을 필요가 없는 터라 엽기적이고 기발한 소재로 만화를 엮을 수 있다.
만화캐릭터보다 먼저 뜬 것은 사실 플래시애니메이션이었다. 그러나 플래시애니메이션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졸라맨’ ‘마시마로’ ‘푸카’ 등이 성공했지만 이들 캐릭터는 스토리가 긴 만화가 아니었던 탓에 작품 수가 제한적이었으며 지속적으로 인기를 얻기 어려웠다. 마린 블루스 같은 웹툰은 플래시애니메이션과 비교하면 평면적이고 정지돼 있다는 점에서, 오프라인 만화와 비교하면 연재가 쉽고 디지털 그래픽을 이용하기 때문에 표현 방식이 더 화려하다는 점에서 상업적으로 ‘비교 우위’에 있다.
웹툰의 가장 큰 장점은 자유로운 제작 풍토다. 웹툰은 스승이 몇몇의 제자를 두고 그림을 가르치는 방식인 도제 시스템이나 배경 따로 인물 따로 형태로 여러 명이 한꺼번에 그림을 그리는 공장식 만화와 달리 작가의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디지툰’이란 새로운 방식의 캐릭터 만화를 시도해 인기를 얻은 장혜인씨의 ‘샐리클럽’(sallyclub.com)이 웹툰의 장점을 살린 대표적 사례. 샐리클럽은 디지털 카메라로 갖가지 표정을 찍어 그 위에 캐릭터 그림을 입히는 방식인 ‘디지툰’을 시도하면서 네티즌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올 한 해 우리는 새로운 그림짱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아마추어 작가들이 인터넷이란 새로운 매체에 나서며 마니아들을 끌어 모을 것으로 보인다. 그림짱들은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내용 △판에 박힌 공장식 만화 제작 풍토 △독창적이지 못한 캐릭터 △일본만화 출판 러시 등 한국만화의 고질적인 병폐를 치유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전망이다. ‘최첨단 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불리면서도 시장에선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한국만화가 인터넷이란 날개를 달고 올 한 해를 뜨겁게 달구기를 기대해본다.
명승은/ ZDNet Korea 기자 mse0130@korea.cnet.com (주간동아4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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