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소속으로 대구에서 출마를 준비 중인 한 정치신인은 최근 지역구의 ‘터줏대감’으로부터 은밀한 제안을 받았다. 당원 10%, 일반유권자 90%로 구성된 경선위원회에서 후보자를 선출하도록 돼있는 새 공천제도 때문에 나온 신종 제안이었다. ‘자기일이 있는 보통 주민들이 직장 일을 제쳐놓고 투표하러 올 리가 없는 만큼 1일당원을 모아주겠다’는 얘기였다.
각 당이 밀실공천의 폐해를 없앤다며 채택한 상향식 공천제가 뜻밖의 부작용을 벌써부터 낳고 있다. 돈다발을 싸들고 실세의 집을 찾아다니는 모습은 줄어들겠지만 선진정치의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도입된 상향식 공천제가 오히려 정치비용만 늘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나라당의 수도권 지구당위원장인 A씨. 그는 최근 자신을 적극 지지하고 있는 지구당원들에게 은밀히 탈당을 주문하고 있다.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당원일 경우 경선 선거인단에 포함될 확률이 그만큼 적어지지 않습니까. 따라서 이들을 일반유권자로 둔갑시켜 선거인단에 참여시키는 게 더 효과적이죠.”
이뿐만 아니라 일반유권자가 경선단 멤버의 90%를 차지하게 됨에 따라 출마자들은 경선단에 포함된 상대후보 지지자들이 결선에서 상대하기 쉬운 후보를 고르는 ‘역(逆)선택’을 할 가능성도 걱정하고 있다.
모 정당 소속 정치신인 A, B씨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경기도의 한 지역구.
A씨는 “경쟁정당 소속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나의 공천경선 상대인 B씨를 돕기 위해 선거인단으로 대거 참여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들 유권자는 특히 나와 B씨의 경선과정을 집중적으로 감시했다가 금품수수 등이 있을 경우 본선에서 이를 폭로해 우리쪽에 타격을 입힌다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갖가지 부작용이 나오기 시작하자 각 정당의 중앙당도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한나라당이 경쟁력 있는 외부 영입인사를 경선 없이 단수 후보로 공천하기로 한 것이나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후보결정과정에서 후보자의 신뢰성에 대한 여론조사 방식을 추가하려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상향식 공천제의 명암 가운데 어두운 부분은 총선 공천과정이 진행되면서 갈수록 불거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결국 제도 못지않게 운용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일깨워주는 새 풍속도이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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